글쓰기/단편

이상한 일 혹은 레인보우 파이

양서토 2024. 7. 31. 22:59

  그건 간단한 문제 같았다. 저기에 영이 앉아있었다. 그는 턱 괸 고개로 창가를 흘겨봤다. 창문엔 서리만 욱욱했다. 그의 앞엔 케이크 한 조각이 놓여있었다. 혹은 졸업파티 기념 레인보우 파이라고 부르든지. 영이 단 것을 입에 대지 않는 식성이란 사실은 교실 모두가 아는 바였다. 틀림없건대 그는 케이크를 먹지 않을 터였다. 덩치가 영의 자리에 찾아갔다. 덩치는 케이크를 가리켰다. 먹지 않을 거면 자기에게 달라고 졸랐다. 헉하고 숨을 삼키느라 영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개만 도리 저어 거절했다. 덩치는 납득하지 못하고 계속 쏘삭댔다. 영이 케이크를 원하는 척 연기를 하고 있다며. 사실은, 영의 몫의 케이크가 아예 분배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으로써 케이크 예산이 낭비되는 일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제안이었다. 그 긴축안은 일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영은 떠안은 케이크를 파티 내내 어쩌지도 않고 고이 갖고 있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야. 일이 나섰다. 일은 영을 자기 등 뒤로 숨겼다. 마침맞게 끼어든 일을 보고 덩치는 잇달아 추궁했다. 그가 영을 이상하게 챙겨주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라고 몰아붙였다. 왜냐하면 너희는 이상하게 친하니까! 고함을 맞은 일은 고개를 돌렸다. 뒤편에 있던 영이 어깨를 굽죄었다. 일은 다시 덩치에게 마주 섰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디가 이상하단 거지. 덩치는 대답은 않고서 팔짱을 끼어 기세를 부렸다. 그 애가 케이크를 원한다는 걸 증명해! 일은 그걸 어째서 증명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덩치가 보기엔 일의 배려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그럴 수 있어야 했다. 영이 케이크 접시를 슬며시 덩치 쪽으로 밀어주기 시작했다. 일이 책상 위로 손을 내리쳐 그릇을 막았다. 그리곤 덩치에게 좋다고 대답했다. 자기 몫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일이 영의 맡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건 무슨 뜻이야. 영은 눈을 감고 얼굴을 엉망으로 쓸어댔다. 케이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지. 혹은 레인보우 파이든지. 일이 영의 궂은 손짓을 붙잡아 멈췄다. 그런데도 너는 왜 케이크를 먹지 않을까. 일은 의자를 당겨 그와 가까이 했다. 그 애는 단 거라면 뭐든지 먹지 않아. 덩치가 한 마디 거저 끼어들었다. 일이 덩치를 물러내는 사이 영은 아름대며 입을 열었다. 설탕은 독이거든. 주변의 눈초리가 벙벙해진 것을 본 영은 자기 말에 부연했다. 그건, 그의 집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는 설탕을 먹으면 붓기가 난댔다. 덩치는 붓기라는 말을 몰랐다. 그러니까 그건, 몸이 붉고 커진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가슴이 빨리 뛰어. 영은 내리뜬 눈을 좁게 굴려댔다. 그리고 그건, 덩치가 말꼬리를 연달았다. 아주 이상한 일이지. 영은 끄덕였다. 영의 집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게 뭐가 이상하지. 우리는 한창 클 땐데. 일이 맞받았다. 케이크를 못 먹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냐니까 그는 바로 그렇댔다. 일이 접시 모서리에 머리 얹힌 포크를 별안간 잡아 들었다. 그리고 케이크의 한 귀를 눌러 잘랐다. 잘린 조각을 포크 머리로 떠얹어 제 입에 넣었다. 영의 목에서 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건 내 거라며. 일이 끄덕였다. 그건 네 거야. 그걸 내가 먹었고. 아주 이상한 일이네. 영은 모르는 새에 터져 나온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지. 일은 다시 한 번 포크에 케이크를 잘라 올렸다. 오늘은 졸업하는 날이었다. 케이크를 먹기에 오늘보다 더 어울리는 날은 없을 것이었다. 일이 영의 얼굴 앞으로 포크를 내밀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그건 네 거야. 영은 일이 내민 것을 삼켰다.
 
  야. 그건. 정말 이상하다. 덩치는 어물대며 뒷걸음 했다.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고. 일은 상연히 웃음 지었다. 의자에 등을 대며 영에게서 한결 멀어졌다. 어때.
 
  이건, 달아. 그리고. 영은 가슴 위에 손을 얹고서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