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편

누구도 모르는 농담과 네가티브 크립

양서토 2024. 7. 31. 23:07

  나는 부정적 찐따, 나는 부정적 찐따, 나는 부정적 찐따, 그리고 나는, 나는 네가티브 크립을 듣죠. 네가티브 크립을 듣는 데에는 몇 가지 난관들이 있습니다. 첫째, 너바나라는 소외된 감수성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것, 둘째, 너바나 앨범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못 받는 블리치 앨범을 골라야 한다는 것, 셋째, 네가티브 크립은 그 앨범에서도 별로 회자 되지 않는 트랙이라는 것이에요. 아티스트, 앨범, 트랙, 세 번의 결정을 모두 비주류적으로 내려야만이 네가티브 크립을 듣게 되죠. 그래서 네가티브 크립의 후크 노랫말은 꼭 세 번 반복되는 거에요. 암 어 네가티브 크립, 암 어 네가티브 크립, 암 어 네가티브 크립... 네가티브 크립을 듣는다는 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무려 삼중으로 부정적이고 찐따 같은 결정이며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은 분명히 부정적 찐따인 셈이에요.
 
  지유가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심하게 웃었다. 그가 “Negative Creep”을 “부정적 찐따”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건 존나 웃긴 짓이다. 내가 두들긴 테이블 위에서 그릇과 맥주잔이 시끄럽게 울렸다. 네가티브 크립은 그냥 네가티브 크립이다. 누구도 그걸 번역해서 말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말하자 지유는 “그건 말이죠 선배, 누구도 네가티브 크립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라고 반론했다.) 가령 “Smells Like Teen Spirit”을 “십대 영혼의 향기” 따위로 부르지는 않듯이. 그건 지나치게 정직하고 정직해서 어색한, 직역투였다. 그러니까 그건 분명 유머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지유 본인은 딱히 부정적이랄 수도 찐따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정적 찐따에겐 무릇 사람을 웃길 만한 유머 감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부정적 찐따 본인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을 제대로 웃겨본 적이 없었다. 찐따가 남에게 웃음을 주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로 여기엔 몇 가지 난관들이 따른다.
 
  우선 첫째로 찐따는 농담을 메모하거나 외우고 다닌다. 덜떨어진 순발력을 메우기 위해 유머를 말하기까지의 예비 동작을 미리 갖춰두려는 것이다. 이번에는 메모를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네가티브 크립↔부정적 찐따”는 이미 내 머릿속에 영영 각인되어 때를 못 가리고 수시로 떠오르게 되었다. 지유가 말을 마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나는 실없게 웃음을 터뜨렸고 지유는 애써 거기에 따라 웃어줬다. 그러는 사이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일행들이 우수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얘 왜 이래. 지유의 유머를 알지 못하는 모두는 맥락 없이 실실대는 걸로 보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였다.
 
  때를 가리지 못한다는 점도 찐따 유머 양태의 빠지지 않는 특징이다. 이것이 둘째다. “그건 말이지,” 나는 당차게 입을 열었다. 자리의 모두에게 네가티브 크립 유머를 알려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명백히 생각이 짧은 짓이었다. 네가티브 크립 유머는 네가티브 크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지유가 그 농담을 쳤던 건 내가 알 만 한 놈이기 때문이었다. 알 만 한 놈 외에는 누구도 네가티브 크립 같은 건 모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도 그렇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놈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봤자 하나도 웃기지 않을 것이었다. 찐따가 아니고 때를 잘 가리는 지유는 그걸 알았던 모양인지 살살 손사래를 보여가며 나를 말리려고 했다. 내겐 그 손짓이 자기 농담을 빼앗길까 조급해하는 걸로 보였다. “그냥 우리끼리만 알죠. 선배.” 지유가 비밀로 봉하려고 하자 다른 녀석들은 되려 호기심이 당겨 자기들에게도 알려달라 성화였다. 그래서 나는 더 때를 못 가리고 서둘러 입을 놀렸다. 간단했다. 지유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되풀이하면 되었다.
 
  나는 부정적 찐따, 나는... 푸하하. 나는 차마 말을 못 잇고 웃었다. 왜냐하면 내가 내뱉은 직역투의 “부정적 찐따”가 존나 웃겼기 때문이다. 이걸 참기란 무진장 어렵다. 어려움 셋째, 찐따는 농담을 끝까지 말하지 못한다. 준비해둔 농담이 너무 웃긴 나머지 지가 먼저 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웃느라 지유가 했던 말들을 조목조목 되집어 풀어나갈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었다. 나는 계속 말해보려고 했다. 나는, 부정적 찐따, 나는, 부정적, 찐따. 그리고 나는, 하하하. 같은 말들만 반복할 뿐 그 뒤의 말들을 이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부정적 찐따”를 주절거리며 폭소했다. 테이블의 모두가, 옆 테이블의 사람들까지도 나를 쳐다봤다. 네가 찐따가 맞긴 하지. 농담을 못 알아먹은 사람들이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웃다 지쳐 테이블에 엎드려 어깨를 꺽꺽댔다. 누군가 날 잡아 일으켰다. 지유였다. 많이 취하셨네요. 지유가 나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나는 지유의 부축에 기댔다. “왜 그랬어요?” 지유가 물었다. 왜긴 내가 찐따라 그렇지. 지유는 한숨을 쉬곤 침 발린 말을 했다. “그냥 취해서 그래요.” 취했나, 내가. 자각하진 않았지만 지유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취기에 네가티브 크립의 후크 파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암 어 네가티브 크립, 암 어 네가티브 크립, 암 어 네가티브 크립, 앤 아이... 그리고 나는... 다음은 뭐였더라.
 
  지유가 웃었다. “앤 아임 스턴드, 요.”
 
  앤 아임 스턴드. 나는 그 말을 직역해본다. "그리고 나는 개같이 취했다."
 
  그게 직역투인가? 아무튼 어색하긴 했다. 내가 하는 건 뭐든 어색하다. 지유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