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언어역학의 이론과 응용

3장. 인스턴트 유성 발생 장치

양서토 - 2021.10.25.

 

 

유성은 별꼬리가 살아있는 한, 인간이 그 귀에 대고 한 말이 있다면 반드시 그대로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르소는 별의 당위를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 유성 예보가 있는 날마다 변두의 들판으로 나가 별밤에 대고 주문을 올렸다. 하지만 뭇 신앙이 그렇듯 즉각의 보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언 일곱해 째였다.

 

리아모가 하르소의 입에서 직접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그녀는 외력을 동반하지 않은 뇌진탕을 경험했다. 하르소는 자신의 가감 없는 고백이 자못 홀가분한지 선연히 웃었다. 그가 선뜻 부탁할 게 있다며 고개를 숙이자 리아모는 당혹스러워 했다. 아무런 신기도 없는 속인의 몸으로 사제의 독실한 제례를 받아버린 기분이었다. 그는 별에 소원을 청할 방법을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고 했다. 리아모는 그 곰살가운 청유를 거절하지 못 했다. 하르소에겐 예의 그윽한 신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었다. 리아모는 유성 예보일에 하르소를 따라 들판으로 가 그가 기도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저음의 입속말이었고, 양손을 마주 모아 깍지를 끼고, 눈을 감고,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의례히 있을 법한 제식이었다. 거기서 어디에 결함이 있는 건지는 도무지 찾지 못 했다. 엄밀히 진찰하자면, 문제가 있다면 절차 중의 어느 부분이 아니라 절차 그 자체였겠지만, 그 진단만큼은 논외였다. 하르소는 환자가 아니라 내담자였다. 내담자에게 반감을 살 만한 말은 함부로 꺼내는 게 아니었다. 기도를 끝낸 하르소가 문제를 찾았느냐며 기대에 차서 물었고, 리아모는 그가 자신을 그렇게 응망할 때마다 언동이 뻣뻣해졌다. 한 가지 외에는 할 말이 없었고, 그 한 가지는 할 말이 아니었다. 당초부터 목전에 서슬퍼렇게 놓였던 정답을 부러 못 본 체 해야 하는 건 너무도 두꺼운 인면피를 요하는 연기라서, 어떤 메소드 배우들은 이를 위한 성형 수술까지 결단할 정도였다. 결국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엔 없었다. 뒤이어 비어져나온 웃음은 안면 근육의 불협화로 영 매끄럽지 못 했다. 하르소는 그걸더러 매력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달콤쌉싸름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바른 웃음을 지었다.

 

리아모는 위치와 거리의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제언했다. 목소리도 실제 물리량인 음파로 전해진다고 하면 진행거리가 길수록 전달되는 도중에 훼손될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매질 속에서 산란하거나, 어딘가의 다른 기도 소리에 상쇄 간섭되거나 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수신원인 유성과의 거리를 좁히는 게 상책일 거였다. 하르소는 쉬이 수긍했다. 리아모는 하르소가 생각하는 바의 위계를 알아맞출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높은 곳을 찾아다녔다. 산턱, 건물 옥상, 고층 타워 같은 곳이었다. 비록 소원이 닿도록 하는 데에 효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다녔다.

 

어느 시점엔가 리아모는 궁금해졌다. 몇년 째 집요히 유성의 뒤꽁무니를 좇으면서 이루고 싶은 소원이 무엇일지. 하르소가 평소 기도하는 소리가 너무 작은 턱에 알아들어본 적이 없었다. 리아모는 그를 들쑤셔봤다. 음파의 진폭을 늘리는 게 정보를 훼손으로부터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 기도의 말소리를 크게 해보라는 것이었다. 하르소는 승낙했지만 기도에 앞서 조금 뜸을 들였고, 막상 전혀 엉뚱한 소원을, 이를 테면 성적이 오르게 해달라든가 월셋방 집값이 내리게 해달라는가 하는 내용을 지껄였다. 노골적인 데코이로, 그게 본심일 리는 없었다. 리아모가 하르소의 순례에 어울려온지도 반 년이 가까웠다. 미지를 이지로 포섭하는 것이 본분인 과학도 리아모는 내막을 밝혀내고 싶었다.

 

*

 

쟁론의 각축과 희박한 타협을 거쳐 성간 전차 기획은 구체화 되었다. 기초 합의는 네 가지 사항으로 좁혀졌다. 첫째, 본 노선은 제2대학입구역을 시발역 및 종착역으로 하는 순환 노선이다. 둘째, 본 노선은 자전에 따른 진행각의 변동성과 달 공전 궤도의 이심률에 의한 상대 거리의 역동성으로 야기될 공사상의 어려움을 고려해, 제2대학입구역과 달표면이 항상 최소의 거리로 일정히 마주하는 물리적 가능세계(이후로 해당 가능세계를 ‘멎은 세계’로 명명한다.)를 경유함으로써 이를 우회한다. 셋째, 본 노선의 철로는 30도 각의 오르막으로 열권까지 상승하다 계면을 기점으로 방향을 틀어 달을 향한 연직 방향 경로로 이어지고 달 중력권에서부터 진입각을 낮추어 진행해 월면 철로로 연장되며 달의 정류장을 횡단한 후 성간 철로로 회귀한다. 넷째, 본 노선의 최대 성간 속도는 256000km/h로 한다. 이 이상의 세부 사항은 학회원들의 언쟁 지구력이 이미 고갈난 관계로 차후에 계속 논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회담이 있고서 바로 이튿날에 그들은 기초공사에 착수키로 했다. 완결된 설계안 없이 공사에 돌입하는 것에 불찬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임원진 측에서는 그러한 위험성에 대해 사전 공사는 불가무하다고 여겨지는 최소한도의 부분에 국한할 것이라고 종용했고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해하는 도중에라도 점진적으로 배를 고칠 수 있다’는 노이라트의 과학론 격언을 원용하며 원안을 밀어붙였다. 이 무리한 가결에 대해 리아모 학회장은 계획 일정을 가급적 앞당길 필요가 있었다고 사석에서 입장을 해명했다.

 

무론 최초의 공사는 임시 골조 공사였다. 그 절차로 지면에서 상공으로 구조물을 쌓아올리는 상향식 공사보다는 오히려 우주에서 지면으로 와이어를 늘어뜨리는 하향식 공사 방안이 채택되었다. 위성 궤도에서부터 느리워지는 와이어는 지구 중력에 당겨져 지면을 향해 수선의 발을 내릴 것이었다. 따라서 와이어 감개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고 멎은 세계로 전이시킬 필요가 있었다. 마침 모 학회원이 창고에서 작년 과학의 날 행사에서 수상한 중학생의 로켓을 발굴했으므로 이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로켓에 감개 위성을 적재한 뒤 쏘아올렸다. 그리고 실패했다. 로켓은 예정된 경로를 이탈해 국경을 벗어나 외지 영공에 들어서버렸고, 외지에선 두말할 것 없이 로켓을 격추시켰다. 외지에서 그 이상의 군사적 조처는 행해지지 않았다. 다음날 제2대학 행정실과 물리학회엔 갖은 외교 항의와 행정 사안이 한량없이 쏟아졌다. 발사 실패 원인에 대해 교내신문 사설에선 ‘관제가 미숙했다.’고 논평했다.

 

소동이 잦아드는대로 학회는 재차 소집되었다.

 

“발사 장치가 필요해.” 리아모가 말했다. 학회실은 호젓해졌다. 그녀의 두괄형 화술은 옛 강동의 패자가 행했던 서궤에 칼을 내리꽂는 행위에 준하는 화제 환기 효과를 발휘했다. 조만간 꾸물 반론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발사한들 소용없다. 이미 로켓의 자체 발사는 완벽했고 문제는 발사가 아니라 관제였으니까. 그런 논지였다. 리아모는 재반론했다. “로켓을 발사하자는 게 아니야. 말마따나 우리 설비로는 순항 단계 관제에 문제가 있었으니까.” 리아모는 요즘 들어 무엇이든 해명할 일이 많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항 추진을 생략할 거야. 대신 초기 부스트의 추력을 대폭 보강할 거고. 지속 추진 비행 방식이 아니니까 로켓 관제는 필요없어.” 원탁회 곳곳에 호응이 있었다. 순간적인 추진은 폭발에 가까울 테니 발사는 뇌관과 기폭제에 가까운 방식으로 작동시킬 수 있고, 그것이 본래 발사체에 부착되어야 했을 추진제의 역할을 대신할 테니 발사체를 극적으로 감량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리아모는 맞장구를 치며 학회원들의 동조를 부추겼다.

 

샤덴이 한 마디 얹었다. “그럼 대포 같은 거네. 탄속이 제2우주속도까지 나오는 정밀 대포.” 리아모는 동의했다. 구조가 단순할수록 안정성이 담보되는 셈이니, 즉 로켓보단 대포가 운용 면에서 간편했으므로 책잡힐 것도 없었다. 샤덴은 찬찬히 제안했다. “그렇담 차라리 격발 장치라고 부르는 게 어때. 그 편이 직관에 와닿는데.” 리아모는 선웃음을 비죽였다. 그리고 거절했다.

 

*

 

샤덴은 학회실에 놓고 왔던 청각 차단에 의한 심신 안정 및 수면 유도 장치를 회수하러 밤중에 복도를 걷고 있었다. 제2대학의 기숙사는 그것 없이 잠들기에는 잡설과 광언, 그에 덧붙는 몸부림이 일으키는 소음이 너무 낭자했다. 오늘만 해도 무량억겁의 디버깅 끝에 오류의 원인이 고작 음운 하나 짜리의 시답잖은 오타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마도서 기사가 ‘어째서 쿼티 타자는 하필 N과 M이, 비슷하게 생겨먹은 놈팽이들끼리 나란히 붙어있는 거냐’며 하늘을 두고 일갈하는 소리에 질겁해 겨우 빠져든 잠기운에서 홀라당 깨어나버렸다. 이성의 빛 없이는 살아가지 못 하는 체질을 타고난 샤덴이 기어이 불가해한 야밤의 어둠으로 몸을 투신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으스산한 복도를 나아가며 간담을 절였다. 정적 속에서 돌연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을 땐 온몸이 움츠러들었고 다만 등줄기에 뜨끔 전율이 흘렀다. 그가 문전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째서 거절하는 거야?” “이건 적당한 일이 아닌 것 같아.”

 

소리가 나는 건 문 저편에서였다. 대화를 구성하는 인원 중 한 명은, 말의 음성과 어투로 알아채건대 리아모가 분명했다. 다른 한 쪽은 신원을 알 수 없었지만 말씨를 두고 보면 적어도 괴한이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제야 샤덴은 저도 모르게 제 살을 짓누르고 있었던 이빨이며 손톱의 날끝을 누그러뜨렸다. 냉철함을 되찾은 그는 이 밀담을 두고 학회의 활동과 관련된 께껄지근한 뒷공론이 오고 가는 것은 아닌지 어림쳤다. 그는 학회원으로서 프로젝트의 전모를 충실히 파악해둬야 하는 응당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이것을 계속해서 엿듣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해.” 리아모는 계속 추궁했다.

 

“똑부러지게 말은 못 하겠지만. 권능이 우리에게 드리워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앞서 신성을 들추려고 하는 건,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이번엔 신원 미상의 남자가 답했다. 그는 낙관적이고 허구적인 세계관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샤덴은 대면해보기도 전에 그 남자가 싫어졌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리아모는 객쩍은 간격을 두며 대답했다. 그건 빈말이었다. 샤덴이 듣기엔 무슨 말인지 천만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샤덴은 그만 입꼬리를 실그러뜨렸다. “이것도 원리적으론 자연적인 유성과 다를 바가 없어. 들어봐. 중력에 이끌려 대기권에 떨어지는 물체를 유성이라고 하잖아. 우리가 하려는 것도 똑같아. 바위 덩어리를 외기권 밖으로 쏘아올리면, 그건 궤도를 타고 잠시 우주를 떠돌다가 빛을 내면서 지구로 끌려올 텐데. 모든 유성은 그렇게 밤하늘로 흘러들어와.”

 

상대가 어궁히 우물대고 있을 틈에 샤덴은 희번득 문을 열어제치고 방을 텄다.

 

“틀렸어. 빛을 내는 건 유성체가 아니라 유성체가 지나친 대기야. 그래서 빛이 꼬리 모양으로 길게 생기는 거고.”

 

리아모는 별안간에 찾아든 인기척에 화들짝 눈망울이 부풀 듯 튀어나왔다. 곧 익숙한 분위기에 얼떨떨 삼박거리다가, 그 정체가 샤덴임을 알아차리고서는 김이 빠졌다. 그리고 일상어를 이해하지 못 하는 샤덴에게 소리 없이 눈짓으로 넌덜을 냈다. 샤덴은 뱃심 좋게 계속 거기에 서있었다. 첫낯의 남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샤덴도 뒤늦게 그를 의식하고는 머슬머슬 뭉그적거렸다. 리아모가 관제했다.

 

“이쪽은 샤덴이라 해. 학회 사람이고, 언어역학 전공이야. 이 사람은 하르소, 내 친구야. 둘이 서로 동기네. 인사해, 샤덴.” 하르소는 조촘 가볍게 놀라는 모양이 샤덴의 이름 정도는 알던 눈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했다. 샤덴은 인사든 소개든 기회를 어벌쩡 절취 당한 것을 올곧잖게 느꼈다. “그건 그렇고 넌 노크할 줄을 모르는구나. 말트집을 인사 삼는 네 괴벽은 그렇다치고. 이 시간에 여긴 왜 온 거야.” 샤덴은 잊은 물건을 가지러 왔다며 천연스레 안으로 걸음을 들였다. 그는 중앙의 탁자로 걸어들어가며 그리고, 하며 말부리를 틀기 시작했다.

 

“내가 오개념을 하나 더 교정해줄 수 있을 것 같네. 단순히 지구에 있던 바위가 대기권을 탈출한 뒤에 재돌입한다고 해서 그걸 유성의 완전한 재현이라고 할 수는 없어. 엄밀히 말해서 유성체는 천체에 한정되는데, 뭐든지 지구에서 난 걸 두고는 천체라고 하지 않아. 또, 그쪽…” 샤덴은 갑자기 말소리에 갈피를 잡지 못 하다가 하르소를 어정뜨게 바라봤다. 하르소는 손을 자기 품으로 가져다대며 제 이름을 넌지시 귀띔했다. 샤덴은 담백한 선물이라도 받은 듯해 재차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치뤘다. “아, 하르소 씨. 하르소 씨는 아까 전에 정령신앙이랄지, 낭만 신학이 맞는 건가, 하여튼 신비주의적인 구석이 있는 주장을 하시던데. 유성에 비과학이라고 하면 아마 거기에 대고 소원이든 기도든 올릴 심산인 거겠지.” 실제로 얼추 맞았으므로 하르소는 기꺼운 탄성을 뱉었다. 독심술 따위의 신통력을 발휘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탁상을 향하던 샤덴은 언젠가부터 몸을 아예 리아모의 쪽으로 틀어버렸다. “하르소 씨가 말씀하셨던 신성이라는 성질은 유성체를 구성하는 외계 원소의 화학적 물성인지도 몰라. 아마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한 것 같은데, 그야 인류는 신성이 발휘되는 현장은 그리 비근히 목격하지 못 했고, 해당 원소가 가이아가 품고 있을 정도로 인간의 곁에 수두룩한 거였다면 신성은 진작에 관측됐겠지. 게다가 신학적으로 봐도 권능의 행사자는 언제나 천구의 바깥에서 강림해오는 걸로 여겨져왔잖아. 아마 신성의 실지를 목도했던 소수의 고대인들도 어렴풋한 영적 육감으로 그건 외계에서 발원했다고 낌새를 챘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엄정한 기도를 기도하거든 지구의 바위를 쏘아올리는 짓은 그만두기를 권할게.” 말을 끝마칠 동안 샤덴의 입가는 당장이라도 치오를 듯 조마조마 후들댔다. 그나마 눈가가 웃어버리는 건 얼굴을 아무리 의식해도 얼버무릴 수 없었다. 리아모는 그가 희언으로 자신을 걸먹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샤덴이 본의를 다해 저런 유연하다 못해 척추가 빠진 듯한 논설을 할 리가 없었다. 하르소의 신앙적인 경향과 자신이 모종의 이유로 거기에 곤란히도 매어있다는 걸 알고 이 상황에 서핑하듯 올라탄 거였다. 리아모는 치솟는 분과 혈압을 애써 다스렸다.

 

“그런데 바위는 어떻게 쏴올리려고 했던 거야.” 샤덴이 유유히 물건을 챙겨들고 한 마디 얹었다. 아주 모르는 게 아니라 의심나는 점을 떠보는 것이 분명한 게, 말투에 은근한 느낌이 있었다. 뭔가 빌미를 잡아도 단단히 잡은 거였다. 리아모는 오늘 밤 동안만 지독한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두 명을 차례로 말상대 하느라 토론적 체력이 너덜너덜해진 참이었으므로, 뾰족이 반격에 나서거나 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출고됐던 거 있잖아. 공사용 발사 장치. 그걸로.” 리아모는 딴곳을 보며 슬렁슬렁 대꾸했다. “역시, 나도 그게 적당할 거라 생각했어. 원래부터 고중량의 물체를 우주로 사출하도록 고안된 물건이니까.” 샤덴은 이런 식으로 악질을 떨 때에만 약빠른 데가 있는 것 같았다. “대형 계획 차원으로 마련된 만큼 쓸모가 난해해 보이는 기구인데, 사적으로 달리 쓸 길이 있었다니 딱 좋네. 아예 유성 발생을 위해서 발주했다고 해도 무리스럽지 않을 정도로 잘 들어맞잖아.” 샤덴의 에두른 폭로는 그녀의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범람해 들어왔다. 그녀는 옆을 희끗거리며 하르소의 반응을 살폈다. “아까 내 입으로 반대하긴 했지만 어차피 장비는 다 갖춰진 거니까 한번 해봐. 실패해도 본전이고 성공하면 형편 좋은 일거양득이잖아.” 리아모는 말초부터 중추까지 신경에 잔재한 얼마 남지 않은 사회성을 있는대로 긁어모아 마지막 사회적 미소를 빚어냈다.

 

샤덴은 귀마개를 챙겨서 나갔다. 리아모와 하르소는 중도에 끊겼던 대화를 마저 했다.

 

“심경이 바뀌었어. 네가 제안했던대로 해보자. 네가 기껏 준비해줬는데, 아까처럼 쉽게 물리치는 거야말로 신성을 해치는 일 같아.”

 

“기껏 준비한 게 아니라. 학회 기자재 중에 마침 적당한 게 있는 거였대도. 아무튼, 괜찮아. 다른 방법을 찾자. 샤덴이 하라는대로 했다간 비위가 뒤집히겠어”

 

*

 

이다음 학회 때에 리아모와 샤덴은 서로 마주 본 채 각자 뇌내의 일방향 텔레파시 채널을 통해 첨예한 신경전을 치뤘다. 학회 종료 후 리아모는 잔업이 있다며 샤덴을 남아있도록 했다. 샤덴은 골타분한 구실이라며 툴툴거렸다.

 

“어젯밤엔 많이 놀랐어. 탐정이 다 됐던걸.” 리아모는 간밤의 숙면으로 사회성을 한껏 보충해 만전의 태세를 갖췄으므로 만면에 여유를 내걸고 항금 사부작댈 수 있었다.

 

“탐정이고 뭐고. 뻔해서 머리 굴릴 것도 없었잖아.”

 

“뻔한 것도 보기 나름인걸. 발사 장치에 다른 뜻이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찾은 근거는 두 가지였는데. 뭐든 물증은 없었어.

 

첫째로, 발사 장치는 로켓 추진에 비해 세련되지 못 하다는 것. 성간 전차 건설은 외지의 우주 엘리베이터를 찍어누르기 위해 시작된 거였으니까. 계획의 본질은 단지 달로 가는 게 아니라 내지 기술력의 과시에 있어. 고상하게 이기는 시나리오만 있고, 악착으로 간신히 턱걸이를 거는 그림은 논외인 거지. 그런데 관제에 한 번 실패했다고 곧장 단조로운 발사 방식으로 갈아치운 건 이상해. 물론 일정을 단축한다든지 인원의 절감이라든지 하는 명분은 실제로도 합당했지만, 이런 계획을 주창할 정도로 불칼 같은 너라면 조금 더 고집 부릴 만도 했잖아.

 

둘째로, 그냥 누구나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조직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기왕이면 자기한테도 낙수 좀 끌어오려고 하는 거 말야.”

 

“탐정이 아니라 박수무당이었네.”

 

“그래서 틀렸어?”

 

“맞았어. 축하해.”

 

“축하 기념으로 이제 내 쪽에서 물어봐도 돼?” 그가 질문한 것은, 어쩌다 그런 일에 협조하게 되었냐는 거였다. 샤덴의 추찰이 막되어 무례할지언정 대견스러운 구석도 있었겠다, 이 정도 전말은 알려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해 리아모는 차근히 설명했다. 하르소와는 가까운 사이라 간청을 거절하기 어려웠고, 그렇게 해서 어울려다니다가, 그가 비는 소원의 내용을 알아내고 싶어져서, 유성 내리는 날에 동행하는 횟수를 늘리려 인공 유성을 쏘아올리려고 했다, 그런 내용이었다.

 

샤덴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반론했다. 하르소의 비밀을 새잡고 싶었다면 멀거니 동행 횟수를 증대시킬 게 아니라, 더 확실한 방법도 있을 거였다. 리아모는 예를 들어 설명해주기를 요구했다. 뭐가 나오건 간에 샤덴이 입안한 대안이라면 뽑아 쓸 일은 없을 거라 다짐했다.

 

그가 구상한 확실한 방법이란, 유성과 더 가까운 곳에서 말소리를 전달하자고 하르소를 설득해 그의 기도를 녹음해 음원으로 만들고, 그것을 내장한 소형 스피커를 유성 바로 근처에 발사하라는 거였다. “그럼 기도를 읊은 음원은 너한테 있을 거 아냐. 아니면 적어도 발사 현장에 있으면 스피커 소리가 들릴 거고.” 책임 못 질 공백이 많은 작전이었지만 기존의 방법에 비해 결정력은 있었다. 리아모는 꽤 유효한 착상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겐 하지 않을 거야.” 어떻든 리아모는 결국 마음 먹은대로 거절했다. 샤덴이 듣기에 되통스런 인상이 있는 거절이라 더 자세히 파고들어야 인지상정인 것 같았다. 육필로 써놓고 본다면 볼펜 찌꺼기가 밀려 나왔을 법한 말이었다. 샤덴은 왜, 하고 캐물어들었다.

 

“발사 장치를 쓸 마음이 없어졌어. 네 입으로 설명 듣고 나니까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서.”

 

“그건 학회원들한테 잠시 용도를 달리 하겠다고 동의라도 구하면 되잖아.”

 

“그렇네. 그래도 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자의식이 비대하니까 자꾸만 여기저기 걸리는 거야. 어떤 게 걸리는데?”

 

“그건 하르소를 속이는 거잖아.”

 

“어떻게든 엿듣는 게 목표면서, 마냥 무구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엿듣다니. 귓결에 우연히 얻어들을 생각이야.”

 

“원칙은 없고 강박만 있구나. 전형적인 엿듣기범의 핑계야. 의중에 그런 의도를 두고서 우연이라 할 수 있겠어?”

 

“그런가. 그럼 그냥 기분 문제니까 내버려둬.”

 

샤덴은 하르소건 리아모건 묘한 데에서 오기가 동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워듣기로 믿음은 이성이고 논리를 초월한다는데, 이렇게 막무가내여서는 과연 타협할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그는 지난밤에 농으로라도 신성 같은 말을 들먹였던 것을 후회했다.

 

*

 

리아모는 결국 맨손 맨몸으로 하르소를 따라나섰다. 더 이상 궁상스레 방법을 강구하지 않기로 했다. 또렷하게 꾸준히 하는 것만이 기도의 요체라고 일러뒀다. 물리학도에게 청했을 답변은 아니었지만 본디 물리학으로 해결볼 수 없는 문제였다. 이쯤에서 하르소도 수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