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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식일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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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 이하루 - 2024.05.07.    어디로 가냐고 한주가 물었다. 앞서가던 미채는 조촘 걸음을 그쳤다. 악기 가방이 덜컥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높은 가방이 옆얼굴을 온통 가렸다. 한주는 미채를 지나쳐 앞으로 돌아갔다. 미채는 고개 돌린 그대로 뒤편에 마냥 곁눈을 뒀다. 모르겠다, 이사라고만 들었을 뿐, 미채는 더이상은 알지 못했다. 미채가 슬몃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불퉁한 길 위에서 걸음새가 기우뚱댔다. 한주의 옆을 가직히 지나쳐 갔다. 비켜 나온 길 멀리에서 사람이 오고 있었다. 한주는 입을 우므렸다.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그는 금방 미채를 뒤쫓았다. 등 뒤에서 미채를 잡았다. 가방을 붙당겼다. 미채의 어깨선이 단박에 비뚜로 쏠렸다. 가방이 치우치는 대로 미채는 쉬이 기울었다. 한주는 눈을..
하향 이하루 - 2023.10.03.    백지에게 개가 있었다. 미채는 뚝 멎어섰다. 개가 미채를 둘레 돌면서 낯선 살냄새를 살폈다. 코가 무릎께까지 닿았다. 백지가 손등을 저어가며 주둥이를 물러내려 했다. 개는 밀림 없이 미채에게 다가들었다. 손품이 자꾸만 머리 위로 타넘었다. 주인 요령이 없네. 미채가 이죽대자 백지가 안된 눈빛을 보냈다. 미채는 고개를 끄덕했다. 자신을 개가 익힐 때까지 가만 뒀다. 개는 곧 혀를 뺐다. 더운가봐. 백지가 손을 끼어들어 개의 코를 대봤다. 물기가 덜했다. 개가 입주변을 날름 핥아 훔쳤다. 두세 번 만에 자기 코까지 닿았다. 백지가 화채를 해먹자고 말했다. 들어가기 전에 미채는 무릎을 쓸어 닦았다.   미채가 거들겠다며 따라붙었다. 칼을 하나 더 꺼내와 달랬다. 둘이 탁자..
식일 이하루 - 2023.08.13.    여기에 상처가 있다. 미채가 등 한 군데를 짚어주었다. 맥 풀고 있던 영윤은 등이 떠밀렸다. 웃몸이 굽는 김에 목도 따라 숙여졌다. 미채의 손끝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다친 데에 일어날 법한 통증 같은 건 없었다. 곰곰 등에 신경써보다가 어깨 한편이 비끗댔다. 다칠 만한 일 없었어. 영윤은 고붓했던 자세를 세우며 미채의 팔을 물리쳤다. 뭐라든 아픔이 없었다. 미채는 내밀린 팔을 소리가 나도록 자리에 폭 떨궜다. 감이 없구나. 미채가 등판을 반히 들여다보는 동안 그는 다시 완완하게 수그러졌다. 미채에게 마주하려 고개를 틀었다. 배면을 댄 몸자세로는 거기까지 닿진 않았다. 뒤뜬 시선이 어중간에 머물렀다. 방에선 눈을 매어둘 만한 흠이 보이지 않았다. 미채가 약을 구해오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