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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언어역학의 이론과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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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인스턴트 유성 발생 장치 양서토 - 2021.10.25. 유성은 별꼬리가 살아있는 한, 인간이 그 귀에 대고 한 말이 있다면 반드시 그대로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르소는 별의 당위를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 유성 예보가 있는 날마다 변두의 들판으로 나가 별밤에 대고 주문을 올렸다. 하지만 뭇 신앙이 그렇듯 즉각의 보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언 일곱해 째였다. 리아모가 하르소의 입에서 직접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그녀는 외력을 동반하지 않은 뇌진탕을 경험했다. 하르소는 자신의 가감 없는 고백이 자못 홀가분한지 선연히 웃었다. 그가 선뜻 부탁할 게 있다며 고개를 숙이자 리아모는 당혹스러워 했다. 아무런 신기도 없는 속인의 몸으로 사제의 독실한 제례를 받아버린 기분이었다. 그는 별에 소원을 청할 방법을 어떻게 고치면 좋을..
2장. 부기명 마도서 분실사건 양서토 - 2021.03.07. 오전 강의가 있는 날이 아니라면 으레 느즈막이 일어나는 샤덴이 구내식당에서 조식을 들고 있었다. 관내엔 소슬하고 푸르스름한 볕이 들었다. 아직 새벽녘이었고 그 외에 사람은 없었다. 그는 요 며칠 간 계속 이 시간에 식사했다. 곧잘 인파가 쏠리는 시간에 왔다간 전공교수와 마주칠지도 몰랐다. 일전에 있었던 언어 윤리관 논쟁에서 샤덴이 판정승을 거둔 이후로 교수는 보다 열성적으로 샤덴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혹여 교수가 합석이라도 하게 됐다간, 그는 임의의 변별을 거쳐 학생에게 즉각적이고 즉흥적으로 구두할 수 있는 교육자로서 응당의 비공식 권한을 아마도 식사 시간 내내 행할 것이었고, 샤덴은 스스로를 그런 처지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 또, 그는 학회에서 멸시받았던 일을 계기로 면..
1장. 언어역학의 이론과 응용 양서토 - 2021.01.10. 제2대학 이학부에선 괴담이 돌고 있었다. 외지에 우주 엘리베이터가 세워졌다는 괴담이. 물리학과의 리아모는 당혹감을 느꼈다. 과학에서 뒤쳐진 외지인들이 어떻게 이쪽보다 앞서 그런 것을 만들 수 있었는가. 리아모는 그 괴담, 즉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거부했다. 그녀는 외지 엘리베이터 완공설을 대체할 새로운 가설을 고안했다. 해당 괴담에서 ‘궤도 엘리베이터’라는 정확한 어휘 대신 ‘우주 엘리베이터’ 따위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뭘 모르는 문학부 녀석들이 퍼뜨린 거짓 소문이 아니겠냐는 설명을 시도. 이 가설은 점심 식사시간에 동기들에게 제안되어 동료평가가 이루어졌고, ‘기존의 괴담보다도 더욱 개연적인 시나리오를 갖췄다.’는 평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학부 게시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