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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단편

선인장

이하루 - 2021.08.18.


  선인장이 죽었다. 적어도 그래 보였다. 색과 부피를 잃어버린 것들은 대개 그랬다. 연은 분재를 내려놓았다. 방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화는 조금 놀랐다. 연이 뜻밖에도 담담했다. 창틀로 바람 소리가 새들어왔다. 화는 마른 기침을 했다. 선인장은 하루 아침에 죽어버린 게 아니었다. 건조는 몇주를 거쳐 계속 되었다. 죽음의 기점을 그 진행 속에서 언제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연은 선인장의 변색과 수축을 보며 각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났을 때 화에게 그것이 죽었다고 말했다. 익사가 아니면 외려 죽기도 어렵댔는데, 결국은 말라 죽었다고. 화는 연을 존조리 타일렀다. 꽃 터지는 것도 봤으니 나름 천수를 다한 거랬다. 쁘띠 다육이 그만큼 사는 거 쉽지 않아. 연은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은 화원에 들려서 맨 처음으로 선인장을 골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것 외의 다른 식물은 이미 죽어 느리워져 있는 게 태반이었다. 곧 바스라져 분진이 될 거였다. 둘째. 가게에서 그것이 가장 비쌌고, 값을 치룰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 사실은 소유욕을 부추겼다. 화가 동의한 이유도 두 가지였다. 물 없이 사육하기엔 선인장이 제일 적당했고, 선인장 줄기엔 수분이 많으니 불시에 물을 취할 수 있었다.
  연은 그 두 가지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초에 화는 연의 부탁을 따끔히 나무랄 셈이었다. 재난 때에 짐을 늘리는 건 상책이 아니었다. 그 심중을 고치기로 한 것은 연에게 그 나이대에 으레 있어야 할 친구가 없다는 것을 새삼 눈치챘을 때였다. 화는 연에게서 선인장에 물을 주지 않을 것을 누차 약속 받았다. 연도 알았다. 그럴 작정이었다. 연은 선인장 분재를 양손으로 받쳐들고 다녔다. 머무를 때엔 무릎 위나 머리맡에 뒀다. 잠자리 가까이에 놓는 일도 있었다. 화는 연이 자는 새에 그것을 적당한 데까지 떨어뜨려 놓았다.
  연은 라디오를 켜기로 했다. 어느 주파수에서도 채널은 잡히지 않았다. 잡음뿐이었다. 바람 소리를 먹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기르던 식물이 죽으면 어떻게 하더라. 연은 시들마른 선인장을 쓰담았다. 버리는 것 외엔 떠오르지 않았다. 묻거나 태우거나 할 리는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이전부터 화는 그것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은 넌더리를 쳤다. 그건 먹을 수 없는 거였다. 연은 바람이 잦아들면 먹을 걸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분재를 바라보다 새우잠에 들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화는 죽어있었다. 연은 눈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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