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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단편

예보

이하루 - 2022.08.11.


  범은 별안간 속력을 높여 차를 다그쳐 몰았다. 하늘빛이 먹먹해졌고 비가 내리리란 예보가 있었다. 이왕이면 정장에 물먹이지 않을 셈이었다. 게다가 우산이며 젖은 밑창 따위가 통메우는 실내를 범은 질색했다. 식장까지는 삼십 분 남짓한 거리였다. 범의 가속에 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릎에 올린 손아귀에도 힘이 실렸다. 범은 룸미러로 안의 눈언저리를 흘겼다. 그건 무언가를 참고 다스리려는 몸짓처럼 보였다. 얼마 안 가 안 눈주름을 풀었다. 범이 그녀를 거울로 비춰 보고 있었다. 그녀는 반동으로 뒤로 쏠린 몸을 내처 시트에 쭉 붙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범의 얼굴을 바로 향해 보았다. 걔는.
  안은 말문을 떼려다가 우선 목부터 축였다. 컵홀더에 손을 뻗으려면 좌석에 파묻힌 몸을 들춰올려야 했다. 걔는,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몸을 꾸렸어요. 범은 정면과 룸미러에 시선을 번갈아들었다. 늘상처럼 운동했고,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한사코 식탐을 가렸대요. 안은 자리에 다시 잘바닥 주저앉았다. 이해할 수가 없네. 범이 대꾸했다. 죽을 셈이면서 그런 데에 쏟을 신경이 있냐는 거였다. 그는 가속 페달에 둔 발을 더 깊이 내밀었다. 도대체가…. 안은 다시 눈초리를 모았다. 기관 가동음이 우글거렸다. 그것에 묻혀 안이 뭐라 말하는 것을 범은 똑바로 듣지 못 했다. 뭐라고? 범은 되물었다.
  과속 중이시라구요.
  범은 계기판을 채보고선 다급히 브레이크를 넣었다. 바퀴가 엇나가며 악척스레 고무 끌리는 소리가 났다. 차체에 걸린 요동에 따라 안의 몸이 얕게 퉁겨나왔다. 범이 팔을 내밀어 그걸 받아내려 했다. 그게 쓸모에 닿지는 않았다. 범은 다시 팔을 거뒀다. 얼떨떨한 채 서행했다. 그는 안을 흘끔대며 ‘언제부터였어?’ 하고 물었다. 안은 앉음새를 추스렸다. 표지가 있었는데. 지나치셨나 봐요. 안이 말을 끝내자 마침 표지판이 가까워졌다. 범은 그걸 확인하고 슬그미 속도를 올렸다. 어둑한 빗기운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한 속도 턱밑까지 차를 끌었다.
  안은 다시 압박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깨와 다리를 모아 안쪽으로 꼿꼿해졌다. 범이 그녀에게 기웃했다. 그러게 아까 화장실다녀오지 그랬느냐고. 네? 안은 재우쳐 물었다가 그러게요, 하며 수긍했다. 범은 네비에 이다음 휴게소를 찾았다. 주행은 더 급해졌다. 안은 그리 서두르지 말라고 일렀고 그것을 범은 예삿말로 들었다. 가는 길에 다음번 휴게소는 없었다. 바로 톨게이트가 나올 거였다. 안은 괜찮다고 거듭 타일렀다. 톨게이트는 얼마 안 있어 나타났다. 통문을 지나고선 그리 속도를 내지 못했다.
  범은 편의점 앞에 차를 댔다. 가장 먼저 나온 가게였다. 안은 점원에게 화장실 위치며 비밀번호를 물어 안내받았다. 범은 온 김에 비닐 우산을 샀다. 그는 비를 생각하며 약한 오한을 느꼈다. 밖에서 우산을 한 번 펼쳤다가 접었다. 검은 우산이 맞을 것 같았다. 안은 금세 돌아왔다. 범은 안더러 먼저 타있으라고 했다. 유독 악상이니까. 검은 것으로 다시 사와야 될 듯 싶다고. 안은 우산이야 어째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너무 신경쓰시는 것 같은데. 안은 다른 둔중한 소리에 밀려 말을 멈췄다. 범은 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봤다. 차 앞덮개에 개구리가 널브러졌다. 그들은 가까이로 가 그걸 살펴봤다. 피가 터져 흐르고 있었고, 죽은 거였다. 범은 운전석에 올랐다. 앞 유리에 세척액과 와이퍼를 틀었다. 뭐지. 갑자기.
  가까이에 다시 개구리가 떨어졌다. 그치지 않고 계속 떨어져내렸다. 간격은 갈수록 죄어졌다. 범과 안은 차창 너머를 휘둘러 살폈다. 개구리는 아예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앞유리에 들러붙은 자국을 닦개가 계속해서 쓸어냈다. 이 주변은 추락해 바스라진 개구리들로 범벅이었다. 범은 앞을 멀거니 바라보며 넋두리를 뇌까렸다. 뭐지. 뭔데. 뭐야…. 안이 말을 걸었다. 반죽 소리며 깡통 소리가 자욱해 잘 들리지 않았다. 범은 귀를 세웠다. 요. 일어날 일은 아니잖아요. 안은 범을 깨우려는 듯 그의 어깨를 붙들어 가로흔들었다. 범은 똑바로 듣고서, 뭐? 그렇게 대답했다. 보라구요. 안이 누차 알렸다. 범은 우수수 낙사하는 개구리들에게 다시 주의를 빼앗겼다. 오래 보지 못 하고 눈을 감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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