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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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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루 - 2021.06.25.


  무연이 언제까지 걸을 테냐고 말했다. 나는 그때 퍼진 훈김을 맞았다. 우리는 고층 타워의 전망대를 나란하게 내리 돌고 있었다. 이곳은 앉을 자리가 없었고 외각의 지상 망원경은 렌즈가 닫혔다. 밤인데도 안개가 끼어 여기로 오는 사람은 달리 없었다. 간혹 올라온 사람은 얼마 안 있어 도로 내려갔다. 전망은 어렴풋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주에 붉은 달이 뜨리라는 예보가 있어 전망대엔 그때에 올 셈이었는데, 그 약속은 결국 파했다. 무연이 그 날 다른 일정을 예정했고 도저히 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댔다. 무연은 실수라며 사과했다. 그리곤 대신으로 오늘 달을 보러 가자며 마물렀다. 그녀는 뭐든 자주 잊어버렸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마주 섰다. 무연이 이쪽을 또렷또렷 쳐다보며 낮에 빌었던 사과를 다시 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건 받기에도 내치기에도 적당하지 않았다. 무연이 손바닥을 위로 편 채 팔을 내밀었다. 내 손가락이라도 꺾어. 공기가 차서 손이 달싹였다. 나는 잠자코 그 손을 바라봤다. 그녀는 한동안 자세를 그대로 고집했다. 곧 건물 안내음이 흘렀다. 폐장 시간이 되었으니 퇴장하라는 안내였다. 무연이 먼저 발을 뗐다. 그녀는 옷소매를 추스르고 입구로 들어갔다. 나는 뒤미처 쫓았다. 우리는 승강기를 타 지상에 내렸고, 그 길로 귀가했다.
  무연은 전철에서 계속 졸았다. 집에 와선 내가 먼저 씻는 틈에 세수도 못 한 채 금세 잠들었다. 그녀는 침대 윗머리의 배게맡에 가로로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평소에 없던 자세였다. 나는 그녀를 깨우려다가 그만뒀다. 그리고 마루를 치웠다. 낮은 탁상과 이젤을 모서리로  몰아넣으면 한 평 남짓한 자리가 비워졌다. 이젤 수평대에 지우개 가루와 함께 반지가 놓여 있었다. 무연은 반지를 좀처럼 끼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때엔 손이 불편하니 잠시 벗어두고 싶다는 거였다. 그리고 나선 다시 끼우는 것을 까무룩 잊어 그대로 벗어둔 채로 놓아두곤 했다. 나는 그 반지를 내 주머니에 넣었다. 소등한 뒤 남는 이불을 한 장 걷어와 바닥에 깔고 누웠다. 침대 평상 위에서 콧소리가 들려왔다. 취침 시간이 아니라 잠드는 데에 오래 걸렸다. 풋잠을 거듭하다가 아침에 무연이 내 늑골을 밟아서 일찍 깼다.

  통증은 이틀 밤이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았다. 왼편 가슴 안쪽에 계속 아린 감이 쑤셔왔다. 호흡하는 일과 자세 바꾸는 것이 괴로웠다. 외과에 들렸더니 골절됐다는 진단이 돌아왔다. 네 번째 갈비의 연골이 부러졌댔다.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의 한 지점을 확대하거나 지시봉으로 가리키거나 했다. 거기에 대고 이곳이 골절된 데라고 짚어줘도 그다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나는 진단명을 들으며 무연의 작고 가벼운 몸을 떠올리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여자친구가 무심코 짧게 밟았을 뿐이라고 부언하자 의사가 갈비뼈는 원래 그런 기관이라고 답했다. 가슴께에 붕대를 둘렀다. 붓기 오른 데가 붕대에 거치적댔다. 진통제를 권유받았는데 복약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외에 별다른 처방은 없었다. 환부가 자연히 붙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얼마나 지나야 나아질지를 물었다. 심한 골절은 아니니 한 달 후면 차도가 있을 거라고 했다. 진료비는 이만 원이 조금 안 나왔다.
  아르바이트 근무 때까지 시간이 떴다. 산보하거나 다른 일을 하기엔 몸이 뻑적지근해서 미리 출근했다. 가만히 서있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점장에게 다음주 근무 때에 예정해뒀던 대타를 물리겠다고 알렸다. 대타로 구해놨던 지인에게도 통보했다. 대타 건은 취소돼버린 붉은 달을 보러가기로 한 약속에 대한 것이었다. 개기월식의 다음 주기는 삼 년 후였다. 무연과는 볼 수 없을 거였다. 되도록 허리를 움직이지 않도록 하며 근무를 버텼다. 물류 진열은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입고된 채로 미뤄두고 이 다음 근무자에게 양해를 빌었다.
  귀가하면 무연이 있었다. 머리가 산발이었다. 종일 집에 있었냐니까 그랬댔다. 이젤 앞 걸상에 완성된 화폭이 두 장 겹쳐 놓였다. 무연은 내게 감긴 붕대를 보고 그 저변이 자신이 낸 부상임을 알았다. 그러고는 내게 상처의 경과와 예후를 물었다. 별 것 없다고, 의사가 그렇게 진단했다. 나는 무연에게 그대로 대답했다.
  무연이 나갔다 오겠다더니 붕대와 소독제를 사들고 왔다. 약국이 문을 닫아서 마트까지 나갔다 왔댔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웃옷을 벗고 침상에 걸터앉았다. 자세는 곧게 했다. 몸을 굽히면 늑골이 눌렸다. 그녀는 배후에서 내 붕대를 끌렀다. 환부는 좋이 피해갔다. 나는 오늘 낮에 묶고 온 거니 새로 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고 그녀는 그게 아니라고 무질렀다. 무연은 새 붕대를 꺼내 내게 둘렀다. 몇 겹을 감아 매고는 매듭을 지었다. 그리고 도로 풀었다. 내게 잘 보라고 언질하고는 재차 감았다가 풀었다. 붕대술은 생각보다 까다로워. 알려주지 않으면 혼자 못 할걸. 너는 요령이 안 좋으니까. 나는 고개를 내리고 그녀의 손동작을 바라보며 그것을 암기하려고 했다. 무연은 내가 외웠다고 말할 때까지 매듭을 짓고 풀기를 잠잠히 계속했다. 푸는 게 묶는 것보다 외려 오래 걸렸다. 부러 무르게 묶었어도 그랬다. 곧 그녀가 붕대 끄타리를 내게 넘겼다. 스스로 해보라는 거였다. 매듭은 맺어지지 않고 자꾸만 엄한 데로 미끄덩댔다. 무연은 그것 봐, 하며 채가고는 다시금 시범을 보였다. 도중에 뻐근해졌는지 어깨며 목을 틀며 소리를 냈다. 나는 몇 번 더 실패했고 무연은 군말없이 가르쳤다. 결국은 제 손으로 붕대를 묶을 수 있게 됐다.
  너는 많이 해봐서 잘 아는구나. 나는 감사인 셈으로 말했다. 무연은 대꾸하지 않았다. 난 감사를 명시하고 사과를 덧붙였다.
  무연은 내일 출장을 나가기로 했다. 미술전의 도슨트가 펑크를 내 무연이 일주일 간 대임을 맡게 됐다. 전시의 테마는 파울 클레랬다. 대학 시절 무연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이름을 익힌 화가였다. 이전부터 무연이 훤히 알던 작가였다. 작품에 대해 끌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도슨트 의뢰를 선선히 승낙했다. 미술관은 부산에 있었다. 매일 출근하기엔 멀어서 그동안 숙소를 잡고 주변에 묵어야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 일로 동행할 수 없었다. 내 일정이 비는 날에 그리로 내려가 무연과 만나기로 계획했다. 때가 맞으면 미술전에서 그녀의 해설을 들어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무연은 방수 여행 가방에 짐을 챙겼다. 겨울 옷이 들어가느라 가방이 빠듯히 찼다. 그녀는 첨삭과 메모로 해진 대본을 죽 훑다가 내일 일정을 위해 일찍 누웠다. 열차 발차 시간이 이른 아침 때였다.
  우리는 자기 전에 짧게 한담을 했다. 대화는 내 상처에 관한 이야기로 흘렀다. 무연은 하필 이 시기에 다치고 그러느냐고 한탄스레 말했다. 나는 시기라는 말에 대해 되물었다. 그녀는 내가 떠날 시기, 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 정도야 괜찮다고 했다. 무연은 뼈가 다친 건 괜찮은 일이 아니라며 토를 달았다. 내가 할 말을 찾지 못 해 얼마간 이야기가 끊겼다. 욕실 쪽에서 배관 떠는 소리가 들렸다. 무연이 나도 자기를 밟지 않겠느냐고 하길래 그건 싫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날 다치게 했던 것도 잊어버리면 분하지 않겠냐며 한 번 더 부추겼다. 나란히 다쳐도 달라질 건 없을 거였다. 나는 그렇게 받아쳤다.
  아니지. 아픈 데는 잊을 수가 없잖아.
  나는 누운 채로 얕게 주억였다. 무연은 사과하고 나서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곧잘 다치는 체질을 생각했다. 그 모든 후유증과 흉터를 기억하지는 못 할 거였다. 대화는 점차 공백이 길어지며 휘늘어졌다. 그러다 우리는 꼬박 인사도 없이 수면했다.
  무연은 내가 일어나는 것보다 일찍 떠났다. 붕대지가 뻣뻣해서 자세를 뒤척이기 어려웠다. 이불은 반듯이 개였고 창이 얇게 열려 있었다. 무연한테 전화했다. 그녀는 열차에 타 떠나는 중이었다. 그녀에게 날 깨우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역까지는 따라 나가겠다고 했었다. 그녀는 날 깨웠댔다. 그저 내가 깨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다시 잠들어버렸다고 한다. 괜찮아, 원래 아프면 잠이 독해져. 무연은 그렇게 일러줬다. 나는 동의했다. 끊고 나서 이어서 잤다. 눈을 뜨면 간신히 오후였다.
  저녁엔 무턱으로 밖엘 나갔다. 분식점에서 식사를 때우기로 했다. 점심은 때를 놓치는 바람에 오후 간 꼬박 굶어 속이 허했는데도 음식이 그리 들어가지 않았다. 속이 더부룩해지면 가슴이 당겼다. 다 먹지 못 하고 남겼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디든 나돌았다. 겨울이라 벌써 일몰이었다. 인적이 뜸한 길로 골라 가며 산보했다. 소화를 기도했는데 그리 효험은 없었다. 움직이느라 다친 데가 맞물려 되려 쓰렸다. 벤치를 찾아 앉아 몸을 쉬었다. 딴딴한 의자라 거북했다. 굽어 앉으면 아팠고 곧게 앉으려면 벤치의 굳은 각도가 방해됐다. 몇분 못 앉아있다 발을 뗐다. 쉬기엔 침대가 낫겠다는 걸 챘다. 귀가하고선 침대에 배를 대고 엎드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걸으면서 통증이 심해졌다.

  밤에 무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붉은 달은 봤느냐는 물음이었다. 오늘이 개기월식 날이었다. 잊어버려 미처 보지 못 했다. 지금에야 창가를 내다보면 평범한 보름달뿐이었다. 예고된 시간은 한참 지났다. 무연은 잊고 있다가 퇴근길에 우연히 본 모양이었다. 보자마자 알려줄걸 그랬다. 너는 당연히 보고 있을 줄로 알고. 그녀는 별 것 없었다며 어벌쩡 위안했다. 전화가 닿은 김에 화젯거리를 생각했다. 그곳 일은 어떤지 물었다. 대본을 골자로 해설해야 하는 건 같으니 여타 도슨트 일 때와 크게 다를 것도 없댔다. 좋아하던 화가잖아, 하고 클레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더 캐물었다. 무연은 대답에 앞서 부인했다. 그리 좋아하진 않았는데. 나는 그녀가 클레에 대해 이야기했던 사실들을 복기하며 늘어놨다. 무연은 좀처럼 떠올리지 못 하는 눈치였다. 관심이 사그라든 게 아니라 당초부터 없었던 것이냐고 확인해보면 그렇댔다. 무연 쪽에서 급히 끊을 일이 생겨 더 따져 들지 못 했다.
  학생 때의 무연은 뭇 미대생이 그렇듯 제 전공에 빠져있었다. 회화와 미술사학을 복수전공 한댔다. 실기만큼 이론이 강해서 그리는 것만큼이나 말을 했다. 우리의 대화도 이따금 그쪽으로 쏠려갔다. 그녀가 관심 작가에 대해 말할 때엔 나는 잠자코 귀만 기울였다. 그녀와 그녀의 전공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신선한 회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작품을 좋아하느냐고, 물을 법한 것을 물었다. 늦은 카페에서 정담을 나눌 때였다. 무연은 ‘건망증이 심한 천사’라는 제목을 댔다. 그건 파울 클레의 그림이었다. 답한 직후에 단말로 작품 사진을 띄워서 내게 보였다. 천사가 슬그시 눈을 감고 양손을 모으고 있는 그림이었다. 선이 푸수수하고 표현이 엉성했다. 채색이나 명암도 되어있지 않았다. 드로잉 습작처럼 보였다. 어디가 좋냐고 물으니까 자기도 제목이 아니었으면 아마 마음에 두지 않았을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가 말한 걸 메모할 셈으로 폰으로 검색해뒀다. ‘건망증이 심한 천사’라고 찾으면 영제로는 ‘forgetful angel’이 나왔다. ‘forgotten angel’로 된 표기도 간혹 있었다. 그 번역은 원제와는 전혀 다른 뜻이었다. ‘잘 잊는 천사’가 ‘잊힌 천사’가 된 거였다. 나는 무연에게 그 번역에 대해 물었다. 무연도 ‘잊힌 천사’가 오역이라는 데에 동조했다. 나는 오역인데도 빈번하다고 첨언했다. 무연은 나름 설명했다.
  오역이기 이전에 오해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해요. 잘 잊는 천사보단 잊힌 천사가 차라리 그럴 듯 하잖아요. 잘 잊는 건 나쁜 성격이니까.
  그녀는 막힘없이 말했다. 나는 그것이 괜찮은 설명이라고 생각해 끄덕였다.
  무연은 낙서할 데가 있으면 종종 ‘건망증이 심한 천사’를 베껴 끄적였다. 유원지의 대기줄 울타리나 교각 기둥 같은 곳이었다. 원본의 밀도가 낙서나 다를 바 없어 손재주가 능하면 모작하기 간단한 터였다. 심심파적 낙서라기엔 꾸준했다. 무연의 모작은 점차 원본을 닮아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틈틈이 그 그림을 보게 됐다. 따라 그리려고 하다가 번번이 실패했다. 천사의 머리가 너무 넓적해지거나 날개와 몸통을 티 없이 잇지 못했다. 무연은 비뚤어진 그림을 보고 자주 웃었다. 몇 번 시도하다가 이내 그만뒀다.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이튿날엔 더 길게 통화했다. 무연은 귀숙했고 나도 퇴근한 참이었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바깥일을 마치고 와선 달리 할 일이 없었고, 방에 남은 무연의 화구가 줄곧 눈에 밟혔다. 무연은 내가 그리는 과정을 봐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말하는대로 세팅을 꾸렸다. 화판에 집게를 달아 새 종이를 끼웠다. 앉기는 어려워 서있어야 했다. 눈높이에 맞춰 이젤 수평대를 끌어올렸다. 화상 통화를 걸어 화면이 화폭을 비추도록 했다. 전화를 침대 등받이에 올려두면 높이가 얼추 맞았다. 그녀가 무얼 그리고 싶냐고 물어왔다. 대답이 곤란했다. 나는 무엇이든 좋다고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싶은데, 그리고 싶은 건 없다니. 사과했더니 그녀는 핀잔이 아니었다면서 사양했다. 무연이 주변에 있는 정물을 따라 그려보라고 제안했다. 나는 탁상 시계를 골랐고, 시계도 정물인가, 무연이 짧게 소곤댔다. 그리기 시작하고 얼마 안 가 심이 부러져나갔다. 무연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힘을 넣을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그녀가 방금 그었던 선을 지워보라고 했다. 봐, 종이가 필압으로 패이잖아. 정말 그랬다. 그 자리 위로 덧그리면 선이 번지거나 비뚤어지거나 했다. 소묘할 때 지울 일 많아. 세게 그으면 종이 못 쓰게 되니까 살살 해봐. 쓰레기통을 받치고 연필을 새로 깎았다. 심을 길게 벗겨야 한다고, 또 끝부분은 얇게 다듬어야 한다고 무연이 조언했다. 그렇게 하다 다시 심을 날려버렸다. 팔힘에 조심하며 그리면 선이 지나치게 섬약했다. 그녀도 그것보단 확실히 찍어 누르는 게 좋겠댔다.
  파인 자국이 생길 수밖엔 없어. 연필은 붓이 아니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적당한 강도를 가늠해보려 했다.

  붕대가 풀렸다. 아침에 몸을 일으킬 때 저절로 떨어져나간 거였다. 단속 있게 묶어두지 않아 잠버릇에 쓸려 헐거워진 거였다. 부러 풀어헤치고 새 것을 가져왔다. 기억해뒀던 매듭법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예정했던 방향으로 끝머리를 잡아빼면 붕대는 오히려 풀려나갔다. 매듭은 계속 실패했다. 외운 게 잘못된 모양이었다. 결국 되는대로 묶었다. 옷 밖으로 태가 두드러졌다. 교대 받기 앞서 근무하고 있던 사람에게 가볍게 지적받았다. 겉옷을 입으면 그런대로 덮씌워졌다. 히터는 끄고 겉옷을 벗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슬슬 실내로 한기가 돌았다.
  근무 중에 연락이 왔다. 무연이 이쪽 몸 상태를 묻는 거였다. 따로 알릴 만한 경과도 없어서 그대로 답했다. 회신으로 본론이 돌아왔다.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대답에 몇분 간 뜸을 들였다. 그동안 달래고 사과하는 말들이 두어 번 도착했다. 나는 언제, 하고 캐고 들었다. 그녀는 모르겠다고 했다. 뒤이어 모르겠지만, 집을 나서기 전까진 끼고 있었던 것 같다고 붙여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회답했다. 손님이 들어서서 눈을 뗐다. 일이 끝날 때까지 수신 내역은 확인하지 않았다. 퇴근 후에 집에서 반지를 챙겨 상가로 나갔다. 금은포에다 무연의 것을 처분했다. 쌓인 연락은 자정이 되기 전에 청산했다.

  흉통이 참기 어려워졌다. 일어나자마자 그랬다. 환부에 부풀었던 자리는 푸릇한 자국이 번졌다. 냉찜질 같은 것으로는 처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앞거리까지 나가서 택시를 잡아 외과로 가달라고 했다. 진료에 대기가 있었다. 허리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기다렸다. 검사는 저번보다 빨리 끝났다. 방사선 촬영과 문진이었다. 곧 진단이 내려졌다. 골절되어 제자리를 잃은 늑골이 움직이면서 통증이 생긴 거라 한다. 부상 당한 후에도 활동량을 충분히 줄이지 않은 게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몸을 움직이면 골절이 호전되기는커녕 더 악화된다는 거였다. 처치된 붕대는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경고도 얹어졌다. 직장 일이 있다고 하니까 결근계를 제출하도록, 안 된다면 허리를 써야 하는 일은 피하도록 권고받았다. 나는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오늘 길에 무연에게 전화했다. 내가 그녀가 있는 곳으로 방문해가기로 약속한 건에 대해 말을 꺼냈다. 응. 기억해. 나는 내 병세를 설명하고, 그게 이유로 그쪽으론 가지 못 할 거라고 전했다. 무연은 순히 납득했다. 몸 조심해. 우리는 서로 밀린 안부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집까지 걸으려다가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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