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단편

매장

이하루 - 2022.03.22.


  유미는 땅에 묻기를 원했다. 달리 장례할 방법은 알지 못 했을 거였다. 부모는 도울 생각이 없댔다. 우리는 죽은 생쥐를 추슬러 산으로 갔다. 도회에서 너그럽고 무른 땅이라곤 거기밖엔 없었다. 유미는 금세 숨이 찼고 찬기를 들여쉰 코끝이 매작지근히 발개졌다. 그는 걸으면서 계속 흔들렸다. 걸음이 얕아 자꾸만 발부리가 걸리는 탓이었다. 겨울옷이 끼어 몸이 잠긴 모양이었다. 산의 질커덕한 땅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유미는 얼김에 멎어서며 손에 움킨 생쥐를 들여다봤다. 그건 유미의 양 손뼉에 뻣뻣히 들어맞아서 흘러 떨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죽은 건 삼일 전이었다. 그 사흘 동안 유미는 생애 처음 맞는 사체를 두고 방도를 잡지 못 하고 있었다. 쥐는 제자리에서 가만가만 굳어 가다 오늘 방과후에야 거두어진 거였다. 진물이나 악취는 없었다. 시간이 들어도 아무것도 물러지지 않았다. 그건 갈수록 마냥 완고해졌고 오히려 분명한 것이 되어갔다. 원래 이런 건가. 나는 그런가봐, 하고 곁장구를 쳤다.
  유미가 이쯤에서 묻자고 했다. 정상까지 가보지 않아도 괜찮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러려고 온 게 아니라며 맞대꾸 했다. 말소리가 빠듯했다. 숨길 트기가 벅찬 것 같았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가져온 삽을 가누어 들었다. 유미는 다져진 길을 벗어나 바깥 수풀로 들어섰다. 아무려나 걸음발이 지나는 데에 묘를 파진 않을 거였다. 그는 곧 적당한 생땅을 찾아 여기, 하고 묫자리를 가리켰다. 흙을 뜨려니까 유미가 끼어들었다. 여기면 괜찮을지 내 확인을 묻는 거였다. 안될 건 없어 보였다. 괜찮았다. 그렇게 말을 맞추고 나는 삽질을 시작했다. 유미는 옆에 비껴서서 내내 움직이지 않았다.
  뒤편으로 인기척이 끼쳤다. 우리 부모 뻘 즈음 될 중년이었다. 코듀로이 겉옷을 입었고, 산객인 것 같았다. 그는 걷지 않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뭘 하고 있니. 나는 애완동물을 묻으려 한다고 밝혀 말했다. 유미가 손을 열어 쥐를 내보였다. 그러면 안 되지. 중년은 상관 않고 말했다. 유미는 쥐를 도로 포갰다. 왜냐고 물을 것도 없이 중년은 덧붙여 가래고 들었다. 이 산엔 지주가 있을 테였고 사유지에선 함부로 매장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거였다. 이건 불법이야. 그는 불법, 하고 그 단마디를 말끝에서 되풀이했다. 그가 일러대는 동안 우린 잠자코 있었고, 그 후로 얼마간 적요했다. 나는 되다 만 구덩이를 우두망찰 바라봤다.
  그럼 얘는 어떻게 하죠. 먼저 나선 건 유미였다.
  갖다 버려야지, 쥐를... 중년은 뜸없이 싱겁게 답했다.
  나는 대답을 궁리하지 않았다. 중년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센바람이 불었고 땀 기운이 있는 몸엔 제법 쌀쌀궂었다. 중년은 몸을 틀어 다시 산로를 올랐다. 우리는 다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깊이를 내야 하는지, 새삼 가늠할 수 없었다. 결국 조금 지나친 구덩이가 되었다. 생쥐 한 마리는 한참 품고도 남았다.
  유미는 구렁의 둘레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움푹진 곳 가운데에 쥐를 놓으려 했다. 그의 팔로 뻗어 닿기에는 기럭지가 조금 못 미치는가 싶더니, 기어이 구덩이 안쪽으로 몸을 들여야 했다. 빠져나올 때엔 몸짓이 어설퍼 무릎이며 팔을 다 쓸려 놓았다. 메우는 것은 자신이 하겠다고 유미가 나섰다. 소복이 헤집어진 흙더미를, 그는 맨손으로 날라 되돌려놓았다. 봉분은 쌓지 않았다. 덮두들겨 평평히 다졌다. 꽂아 세워 표식 삼을 만한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유미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짐승이라든지 철모르는 아이, 누구도 여길 하작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매장을 끝내고 우리는 얼마간 멀거니 쉬었다. 유미의 매무새는 흙으로 지저분했다. 발육을 염두해 치수를 부풀린 교복 마이가 아직 그의 몸피엔 큼직했다. 나는 유미가 장래에 그만큼 자라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랍  (0) 2023.11.17
예보  (0) 2022.08.12
선인장  (0) 2021.08.18
회로  (0) 2021.06.25
닫힌 계  (0) 2021.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