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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단편

드랍

이하루 - 2023.11.15.

 

 

  옥상에서 너는 그를 마주친다. 마침 네 얼굴은 한창 울면서 진창같이 되어있다. 죽고 싶도록 부끄러웠으므로 이 김에 죽기로 결심한다. 너는 헤까닥 담장 위를 올라타려 몸을 솟군다. 높이가 모자란 바람에 넘어가지 못한다. 뒤편에서 그가 큰소리를 내 너를 불러세운다. 너는 담장 너머를 향해 몸을 재촉한다. 담벽을 붙잡고서 못 미친 발돋움을 칠떡댄다. 그가 너를 붙잡아 떼어낸다. 너는 얕은 뿌리처럼 엉성하고 요란히 뽑혀 나간다. 너와 그는 나란히 바닥을 나뒹군다. 너희는 바닥에 찧인 데를 앓느라 서로 말문이 막힌다. . 그가 먼저 따져 묻는다. 왜 그래. 너는 뭉개 감았던 눈을 뜬다. 그가 널 눈앞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아까 같은 충동이 화끈 차오른다. 너는 계단실을 향해 급스레 내달린다. 옥상에선 내려갈 길밖에 없다. 너는 난간에 손을 올린 채 바투 잰걸음을 한다. 곧 뒤에서 철문을 열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쫓아온다. 너는 층층대를 덜컥대며 두 단씩 짓쳐 넘긴다. 대리석 바닥이 번들거린다. 그게 신경 쓰인 너는 밑만 쳐다본다. 왜 쫓아오냐고, 너는 달리면서 소리친다. 왜 도망가느냐고, 그가 맞받는다. 복도에 울울히 소릿바람이 친다. 대답을 낼 여유가 너에겐 없다.

 

  곧장 사 층이다. 삼 학년이 쓰는 층이다. 네 동기들이 소란에 이끌려 계단 언저리에 눈길이 모인다. 너는 팔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삼 층으로 지나쳐 간다. 그가 인파에 대고 외친다. 너를 붙잡으라고. 따라붙는 사람은 없다. 겁결에 수군거릴 뿐이다. 뒤엘 확인해 볼 엄두도 없이 너는 따끔히 질려버린다. 괄기를 떨다가 계단 끄트머리에서 발밑을 비끗댄다. 균형을 잃은 너는 계단참에서 헛발을 내딛다가 벽까지 끝져 부딪친다. 금세 가까워진 그가 살피러 다가온다. 따라잡혀 버린 너는 일단 주저앉아서 손차양에 얼굴을 묻는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로. 그는 괜찮으냐고 연방 묻고 너는 신음으로 얼버무린다. 네가 얼굴을 매만지길래 그는 그곳을 다친 줄로 안다. 그는 그곳을 드러내 보려 한다. 너는 감추는 손에 안간힘을 쓰고. 너희는 얼마간 미닥질을 다툰다. 애쓰다 못한 그가 다른 사람을 부른다. 네가 아파하니까, 도와달라고. 너는 그를 단걸음에 뿌리치고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도망친다.

 

  너는 그대로 학교에서 빠져나갈 작정이다. 그길로 이 층 쪽 계단으로 내려간다. 박하게 미끄러지는 소리가 별안간 네 귀에 일렁인다. 그제야 너는 뒤를 돌아보는데 잇따른 큰소리에 눈이 바짝 감긴다. 그가 넘어진다. 가눠진 데 없이 온몸으로 쓰러진 모양이다. 질겁한 사람들이 그를 추스르러 다가간다. 너는 몸을 돌려세우고서 한참 머뭇거린다. 네가 몽긋대는 새에 그는 얼추 머리를 들기 시작한다. 물론 너는 그가 성히 일어나기를 바랐는데, 막상 그가 선뜻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더럭 주눅이 난다. 그는 겨우 들친 머리로 네 쪽을 내다본다. 너는 역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한다. 너한테 대고 그가 내질러 묻는다. . 왜 도망가는 거냐고. 그는 다시 널 뒤쫓는다. 넌 왠지 악이 받쳐 마주 소리친다. 왜 쫓아오는 거냐고. 아직 덜 아문 그의 걸음새를 너는 대번에 따돌려 낸다. 너희는 서로를 시야에서 놓친다. 걸음 소리는 계속 너를 뒤따르고 있다. 먼저 이 층에 도착한 너는 빈 교실에 들어가 숨는다. 거긴 실험실이다. 이동수업이 있을 때에만 사용하는 곳이다. 너는 불 꺼둔 채 가만히 기다린다. 앞문에 등을 기대두고 뒷문을 망본다. 담박질 치면서 부푼 숨이 꺼져간다. 너는 이제라도 눈가를 닦아낸다. 그러다가 다시 울음이 난다.

 

  곧 종이 친다. 얼마 안 있어 문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넌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복도에서 너는 그를 마주친다. 그가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의 눈 밑에 푸릇한 멍이 있다. 너는 그의 얼굴을 보고서 웃음이 나버린다. 틀어막으려다 다시 터지고 만다. 그는 너에게 달려오기 시작한다. 너도 반대편으로 달아난다. 너는 다른 편의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치달린다. 수업 시간이라 복도 계단엔 너희들 뿐이다. 너희는 다시 옥상에 닿는다. 옥상에 들어서자 그는 목청 돋워 너를 추궁한다. 너는 거기 놔두고 온 가방을 챙기고서 발걸음을 돌린다. 거기에 네 물건이 다 들어있다. 그러고서 너는 왔던 길로 돌아간다. 이 층을 지나쳐 일 층으로 내려간다. 너는 무턱으로 내달리다가 학교 밖으로 흘러 나간다. 이제 숨이 말라버린 너희는 달리는 시늉뿐이다. 잠깐만. 그가 못 이기고 멈춰 선다. 너도 따라서 발걸음을 그친다. . 너는 목이 메어 짧게 말한다. 너희는 내리 맺힌 숨을 몰아쉰다. 그가 진정하고 입을 연다. 이젠 죽기엔 너무 낮잖아. 그는 애써 너를 똑바로 바라본다. 너는 거기에 호응하려다가 실패한다. 이제 너는 자꾸만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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