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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단편

날개는 멎지 않고 환상통을 부른다

양서토 - 2024.05.31.

 

 

  그건 가짜 같았다. 레이무는 아치교 꼭대기에 서 있는 새 장식에 눈이 마주쳤다. 그걸 새라고 불러야 할까 그녀는 확신이 없었다. 날개는 새의 것이었지만 그 밖의 얼굴이며 몸이 꼭 사람 꼴이었다. 아치 꼭대기가 높아 분명히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날아서 다리 위로 올라갔다. 장식을 향해 가까이 다가섰다. 그것에 손을 대보려 했다. 그러자 새 장식은 날갯짓을 치며 달아나 버렸다. 진짜였구나. 그녀는 새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밑에서 레이무를 부르고 있었다. 되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이모에게 돌아가 자기가 본 것에 대해 물었다. 세상에 그런 새는 없었다. 환상을 본 거라고 이모는 단언했다. 레이무는 정말로 봤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보여드리면 믿으시겠죠. 그녀는 다시 새를 잡아 올 양 아치 위 높을 데를 넘어다봤다. 이모는 거푸 고개를 내저었다. 위험하니 잡을 생각 말랬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란 꾸지람에 레이무가 칭얼거렸다. 그럼 나는 새를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모는 단순하게 얼버무렸다. “새를 멈추려면 사진을 찍어라.”

 

  레이무가 하품했다. 사진사는 좀처럼 셔터를 못 누르고 잡도리만 재면서 미리부터 아이들을 대열 맞춰 세워뒀다. 아이들은 기다리기가 지쳐 점점 자세를 흐트러뜨렸다. 사진사는 빨리 찍고 들어가자며 타일렀지만 아직 한참은 더 뜸 들일 기색이었다. 학생 대열은 맥이 빠져 앙탈 소리를 냈다. 사진사가 카메라를 가리켜 주의를 환기했다. 렌즈를 보라는 거였다. 레이무에게 카메라는 보이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이 다 가렸다. 레이무는 그만 시선을 돌려 딴청을 피웠다. 옆편의 금발 머리 아이와 마주쳤다. 금발이 혀를 짧게 내밀었다. 레이무는 고개를 흘려 넘겼다. 무시당한 금발이 역정이었다. 군시렁대며 따져 들었다. 뭐라든, 레이무는 생먹고 말았다. 그리고 하늘에다 눈을 피했다. 사진사가 소리쳤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다시 정면에 집중했다. 넋 빠진 레이무의 귀엔 닿지 않았다. . 금발이 옆에서 팔꿈치로 찔렀다. 레이무는 화들짝 고개를 되돌렸다. 마주 본 금발의 얼굴이 아까보다 낮아 보였다. 눈높이가 평소와 어긋나 있었다. 추락하는 듯한 소름이 발밑에 돋쳤다.

  공중으로 무언가가 날아갔다. 넓은 하늘을 검은 잔상이 가로질렀다. 운동장으로 바람이 끼쳤다. 골대의 그물망이 펄럭였다. 아이들은 강풍에 휘몰리는 머리칼을 붙잡으며 두어 발짝 떠밀려 나갔다. 새가 지랄한다. 사진사가 그걸 새라고 불렀다. 새라고. 레이무가 남모르게 입속말을 종알댔다. 뒷산이 깊어 거기서 더러 맹금새 따위가 내려온다고들 믿었다. 그러나 새가 이토록 공기를 뒤흔들 순 없을 거였다. 레이무는 이 풍압이 익숙했다. 꼭같은 바람을 언젠가 맞아본 적이 있었다. 새는 아니었다. 아님 뭔데. 금발이 삐대 들었다. 레이무는 오래 생각하다가 짐짓 간단히 대답했다.

  “네가 모르는 것.”

  “네가 모르는 거겠지!”

  나는. 레이무가 대꾸하려는데 금발이 고개를 홀랑 앞으로 돌려버렸다. 모래바람이 슬슬 걷혀나갔다. 사진사가 쓰러진 삼각대를 고쳐 세웠다. 흐트러졌던 대열이 다시 제자리를 잡아갔다. 레이무는 입을 닫아 차올랐던 말을 삼켰다.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쾌청. 아침에 봤던 일기예보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대로 하늘에다 먼눈팔았다. 레이무가 모르는 새에 사진이 찍혔다.

 

  학급 졸업사진은 며칠 후에 교실 뒤편에 게시됐다. 사진을 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레이무 이야기로 입을 모았다. 단체 사진인데도 레이무의 모습은 첫눈에 뜨였다. 올망졸망한 또래들 사이에서 레이무만 유독 위로 솟아 나왔다. 옆에 나란히 섰던 금발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커 보였다. 레이무의 키는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낙차 사이엔 위화감이 감돌았다. 레이무가 등교하자 아이들은 사진을 들고 찾아갔다. 사진을 본 레이무는 헉하며 딸꾹질했다. 그녀가 입을 틀어막았다. 주저하는 레이무를 본 아이들은 덩달아 심각해졌다. 너 귀신이야? 아이들은 심령사진이 찍힌 양 흥분해서 수선을 피웠다. 그렇다면. 레이무가 반질했다. 귀신이라면 믿을 거냐고. 아이들은 뭐라고도 않고 물러났다. 그들은 한참 사진을 뜯어본 끝에 낙차의 이유를 찾아냈다. 레이무의 다리가 땅에 붙어있질 않았다. 앞사람의 하반신에 가렸으나 자세히 보면 발이 공중에 붕 떴다. 머리 하나 정도가 들어갈 높이였다. 사진 속에서 레이무는 날고 있었다.

  레이무는 수업 시간 내내 질문 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함구로 버티다가 혼자서 하교했다.

  귀가하자마자 이모가 졸업사진 이야기부터 꺼냈다. 학교에서 퍼진 소문이 이모 귀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모는 남들 앞에서 난 이유를 문책했다. 레이무는 날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어머니 잃은 레이무를 이모가 거둬들이면서 받아낸 약속이었다. 어머니는 하늘을 날다가 영영 사라졌다. 레이무는 그렇게 전해 들었다. 간혹 이모는 어머니가 추락했다는 투로 말하곤 했으나 레이무는 말실수일 거라 여겼다. 그녀는 날 수 있으니까 떨어질 리가 없을 거였다. 어머니도 레이무처럼 날 수 있었듯이 레이무도 어머니처럼 사라질 수 있었으므로 레이무는 날아선 안 되었다. 이모와 레이무는 그렇게 정리했다. 다짐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시시로 참지 못할 버릇처럼 몸을 띄우곤 했고 그건 나이가 들수록 고쳐지긴커녕 외려 빈번해졌다. 그녀가 뜻하지 않아도 몸은 멋대로 떠올랐다. 이번 졸업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모의 추궁에 레이무는 저절로 떠올라버린 거라며 항변했다. 그래도 참아라. 그렇지 않으면. 이모는 더는 말하지 않았으나 레이무는 듣지 않아도 뒷말을 짐작했다. 너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어도 제 팔자죠.” 레이무가 평소 같지 않게 대들었다. 엄마도 그렇잖아요. 때아닌 반항에 이모는 어안이 벌어졌다. 마음대로 될 일 같았으면요, 엄마는, 이모가 그만하라며 끊고 들었지만 레이무는 기어이 할 말을 마쳤다. “사라지고 싶어서 사라졌겠어요?” 상기된 그녀는 어느샌가 새어나간 힘으로 날고 있었다. 이모가 레이무를 내려쳤다. 레이무는 맞은 뺨을 감쌌다. 혀로 건드려 본 볼 안쪽에 붓기가 굳었다. 피가 고여 입을 다물었다. 그 자리에서 집 밖으로 돌아나갔다.

  정처 없이 걸어 큰길에 닿았다. 하교 인파가 몰려가는 중이었다. 동급생들이 레이무를 알아봤다. 그들은 낮때처럼 사진 이야기로 지분댔다. 그녀는 왔던 길을 돌아 인파와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달리는 그녀를 누군가가 발맞추어 따라왔다. 금발이었다. 숨을 벅차 가며 레이무를 불러세웠다. 누가 괴롭히냐. 금발이 제 뺨을 가리켜 보였다. 레이무가 뒤늦게 왼뺨을 가렸다. 손댄 자리에 열이 올랐다. 그녀는 뭐라도 뿌리칠 양 머리를 휘저었다. 날다가 부딪혔다, . 금발은 여전히 미심스런 눈초리였다. “정말 날 수 있어?” 레이무는 대답은 않고 불퉁히 뺨을 쥐었다. 거짓말. 금발이 뻣뻣하게 웃음을 흘리며 이죽댔다.

  정말이라면, 레이무가 불쑥 단언했다, 어쩔래.

  보여주면, 금발은 웃음기가 마른 입가를 애써 실룩였다, 믿을게.

  레이무는 금발을 이끌고 뒷산 쪽으로 향했다. 해가 저물 즈음 숲속 폐신사에 닿았다. 금발이 질린 티를 냈다. 아무도 없잖아. 고목이 울울해 사방이 진초록으로 그늘졌다. 그럼 사람들 다 보는 데에서 날까. 레이무는 천연히 대받고는 신사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비행 버릇이 주체 되지 않을 때면 늘 이곳에 숨어 몸을 띄웠다. 금발이 얼떨떨히 뒤따랐다. 본당을 돌아 뒤편으로 갔다. 외벽 곳곳에 칠감이 닳아 흰 데가 드러났다. 소복히 포개진 낙엽들이 걸음발 아래 잘근잘근 갉혔다. 레이무가 걸음을 멈추더니 금발을 향해 돌아섰다. 금발의 의아쩍은 눈짓에 그녀가 굳게 끄덕였다.

  레이무는 팔을 벌려 균형을 가누었다. 자기 발밑을 힐끗하곤 눈을 감았다. 그녀의 앞머리가 들뜨다가 몇 올씩 걷혀 올라갔다. 옷자락 밑으로 공기가 들어차 품이 부풀었다. 뒤꿈치부터 들쳐지던 발끝이 곧 바닥을 떠났다. 그리곤 계속해서 바닥에서 멀어졌다. 항력에 밀린 낙엽이 둥근꼴을 그리며 쓸려나갔다. 그녀는 찬찬하게 상승했다. 어느새 자기 키보다 높은 데까지 올랐다. 금발은 그녀를 쳐다보려 뒷걸음쳤다. 날아오르고 육십 초를 헤아리고서 눈을 떴다. 나는 날 수 있어. 레이무는 웃었다.

  “어떻게?” 금발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의 재주를 마치 마법 같다 감탄했다. 나도 날고 싶어. 알려달라며 부탁을 구했다. 레이무의 몸이 공중에서 주춤하고 한풀 꺼졌다. 어떻게? 레이무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대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몰라.” 그녀는 허리를 숙이며 착지했다. 금발은 삽시에 풀죽은 표정이 되었다. “거짓말.”

 

  레이무는 복도에서 기다렸다. 이모가 담임교사와 면담 중이었다. 문틈 가까이에 귀를 대면 교무실 안쪽 소리가 새어 나왔다. 교사는 단도직입으로 질러 물었다. 집안 내력과 관계있는 것이냐고. 무녀 가문의 기질을 레이무 또한 대를 이어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거였다. “무녀 일이요?” 이모도 내놓고 되받았다. 그리곤 실소를 가장해 웃기 시작했다. 레이무의 영력이 들통날 것 같을 때면, 그녀는 늘 그것을 미신 취급하며 아닌 척 능청을 뗐다. 그래서, 정말 레이무가 날 수 있다고 믿으세요? 넉살에 밀린 교사도 제풀에 쓴웃음을 지었다. 무녀와 그 피붙이라면 날아오르는 신기를 벌일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차마 진지하게 밀어붙일 순 없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나 도는 뜬소문일 법했다. 이모가 별안간 웃음을 그쳤다. “어쨌건 레이무는 무녀도 아니고요.” 그녀는 어머니가 없어진 뒤부터 그런 일들에서 레이무를 한사코 떼어놓으려 애간장이었다. 교사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었다. 그럼 이 사진은.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레이무는 숨죽이고 문살에 귀를 붙였다. “사진 보정을 실수하셨나 보네요.” 이모의 제안이었다.

  아침 조회 시간에 교사가 그대로 공지했다. 보정하기 전의 원본을 찾으면 앨범엔 그것이 실릴 거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촬영할 수도 있겠댔다. 그러니 귀신 들렸단 얘기는 그만해라. 말을 마친 교사는 저도 모르게 레이무에게 눈길을 줬다. 모두의 시선이 같은 데에 따라 모였다.

  교사가 떠난 교실이 술렁였다. 아이들은 사진이 보정되었단 말은 순 핑계 취급했고 레이무를 쏘삭이는 말말들에 되려 불이 붙었다. 그녀의 책상 자리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어 입방아를 찧었다. 그녀는 모른 체 했다. 귀신. 헛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 말을 건져 들을 수 있었다. 모른다고! 그녀가 홧김에 의자를 밀치며 일어섰다. 그것이 고동을 울렸다. 몸이 한순간 솟구쳐 올랐다. 갑작스런 부유감에 균형을 못 잡고 금세 거꾸러졌다. 넘어지는 굉음이 교실의 소란을 끊었다. 난 건가. 그 짧은 부유를 몇몇은 눈치챘다. 막상 비행을 보고 나자 누구도 선뜻 믿으려 하진 않았다. 레이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쓸린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레이무는 못 날아.” 금발이 나서서 말했다. 방금 건 레이무가 제 발로 뛰쳐올랐을 뿐이랬다. 그 말이 다시 소란을 지폈다. 내친 김에 금발은 졸업사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사진에선 촬영될 때의 한순간만 속이면 영원히 그런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레이무, 너만 돋보이려고 뛴 거잖아. 금발이 그녀를 직시하며 쏘아붙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황망히 벌어졌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지. 그녀가 금발을 맞바라봤다.

  거짓말한 건 너잖아. 금발이 팔을 치켜 삿대질을 올렸다.

  왜 나를 믿지 않아?

  그럼 정말 날기라도 했단 거냐? 금발이 질세라 목소리를 높이며 주변을 보란 듯 팔짓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레이무는 주변을 둘러보곤 이를 악다물었다. 입안을 바득대며 금발을 향해 눈살을 부라렸다. “말이 돼? 너만이 날 수 있다는 게.” 금발이 중얼거렸다.

  나는. 레이무는 일단 한 마디를 내질렀다.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뒤가 끊겼다. 그것밖엔 말할 수가 없었다. 안달이 삭여지질 않아 손발을 떨었다. 아이들은 그녀의 몸에서 뜨거운 것이 터져 넘치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히 바라봤다. 누군가가 외마디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정신이 깬 레이무는 자신이 어느샌가 떠올라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등 뒤의 창밖에서 검은 것이 날아갔다. 바람이 들이쳤다. 반만 열어둔 창문이 풍압에 완전히 밀려났다. 창가에 서 있던 아이들은 눈을 가리거나 고개를 숙였다. 블라인드가 유리창에 달각거렸고 책상에 놓였던 종이쪽이며 필기구가 모조리 흩날렸다. 바람은 짧고 굵게 지나갔다. 교실은 잠잠한 난장판이 되었다. 레이무는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가 잠깐 날았던 일은 바람세에 묻혀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다. 교실 한복판에 까만 깃털이 한 가닥 흘러 들어왔다. 새다. 레이무는 급하게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새일 리가 없었다. 그녀는 하늘을 이저리 살펴댔다. 하늘엔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없었고 레이무는 한동안 의심의 눈을 거두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녀의 등을 건드렸다. 아까 못하고 끊긴 말이 뭐였는지 물어왔다. 레이무는 그 아이를 반히 쳐다봤다. 그는 부담을 느껴 금방 시선을 피했다. 나는.

 

  나는 날 수 있다. 레이무가 읊조렸다. 방과후에 그녀는 폐신사에 들러 비행했다. 다른 날보다 오래 날았다. 반 시간째 날고서도 아직 여력이 남았다. 마냥 치올라가고 싶었지만 끽해야 고목 꼭대기까지였다. 나무숲을 벗어났다간 바깥 눈에 띌 것이었다.

  신사 입구로부터 인기척이 들려왔다. 한창 날던 도중이었다. 급하게 내려왔지만 땅에 발붙이기 전에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수풀에서 여자가 걸어 나왔다. 훤칠한 어른이었다. 갈색 마의와 반바지 차림이었고 같은 색의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목걸이 한 카메라를 잡아 들었다. 렌즈가 이쪽을 향했다. 동작이 재빨랐다. 곧 셔터가 찰칵였다. 레이무는 아직도 공중에 있었다. 그녀는 다 늦은 판에 공연히 서두르다가 바닥에 넘어졌다. 여자가 피식하곤 또다시 셔터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선선히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자신을 아야입니다.”하며 이름으로만 소개했다. 레이무는 제힘으로 일어섰다. 그녀는 사진을 없애달라 부탁해야 할지 사진기를 빼앗아야 할지 속계산했다. 아야는 여전히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 손에 레이무는 못내 악수했다. 레이무는 쥐는 둥 마는 둥 했으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알맞게 감겼다가 떨어졌다. 절 찍은 사진은 버려주세요.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아야가 품 안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 들었다. 이것도요? 그녀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레이무가 찍힌 사진이었다. 이곳 폐신사에서 찍힌 거였다. 거기에서 그녀는 제 무릎 높이 언저리를 동동 떠올랐다. 자신의 들뜬 발치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달게 붉히고 있었다. 그녀는 사진 속 자신의 옷차림에 눈여겼다. 저학년 때 입었던 원피스였다. 그것이 어느 날의 광경이었는지 레이무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혼자 폐신사에 와서 날았던 날이었다. 이건 그때 찍힌 사진이었다. 어떻게. 목이 떨려 말을 차마 맺지 못했다. “어떻게냐뇨. 당신은 날 수 있잖아요.” 아야는 짐짓 능청거렸다. 말 돌리지 마! 그게 아니라! 레이무는 윽박지르려다 멈췄다. 어떻게 이 사진을 갖고 있느냐고 따질 셈이었다. 비행할 때엔 항상 혼자였는데. 레이무는 마른침을 삼켜 목청을 추스르고 고쳐 말했다. “그걸 믿어?”

  “저는 다 봤어요. 처음부터.” 아야는 춤추듯 사뿐하게 뒷걸음쳐 갔다. 귀신 같은 발놀림이었다. 몇 걸음 딛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저만치까지 냉큼 멀어졌다. 그것도 제가 찍은 거고요. 그 사진은 선물 줄게요. 소문은 안 낼 테니 걱정 말아요. 아야는 맑고 바른 발음으로, 빠르게 많은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젠 그만둬요. 나중엔 다른 사람들한테도 들킬라. 그럼 위험하잖아요?” 그녀가 수풀로 발을 들였다. 끝까지 레이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홀가분히 손인사를 흔들었다.

  잠깐. 레이무는 아야를 쫓아갔다. 아야는 빽빽이 우거진 수림을 서슴없이 들어갔다. 레이무도 망설이지 않고 뒤따라 들어갔다. 신발코에 자꾸만 나무뿌리가 치었고 거친 수풀이 살갗을 긁고 지나갔다. 그녀와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어린이의 몸피로도 빠듯한 험지를 아야는 솜씨 좋게 제쳐 넘겼다. 결국 레이무가 먼저 지쳤다. 쫓던 사람을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나무에 기대 숨을 몰아쉬며 아무도 없는 저편을 한스레 노려봤다. 곧 저편의 숲나무들이 일제히 낭창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날아오르며 바람을 날린 거였다. 레이무는 다시 그리로 내달렸다. 나무가 흘린 짙은 잎사귀가 쏟아져 내렸다. 얼굴에 내려앉은 한 닢을 떼어냈다. 그건 까만 깃털이었다. ? 레이무는 박차 날아올랐다. 나무줄기가 뭉친 데를 막무가내 뚫고 숲보다 높이 올라갔다. 레이무의 주위에 하늘이 펼쳐졌다. 멀리에서 무언가가 날아갔다. 제 몸을 다 가릴 만큼 크고 검은 날개가 날갯짓하고 있었다. 그건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세 사라져 버렸다.

  레이무는 사진기가 갖고 싶다고 이모에게 부탁했다. 이모는 사진기를 어디에 쓰려는지 의아해했다. 새를 멈춰보려고요.

 

  이모가 허락해주지 않아서 레이무는 직접 카메라를 구하기로 했다. 그녀는 곧장 상가의 카메라 파는 가게를 찾아갔다. 진열된 카메라를 가리키자 주인이 매대에 꺼내놓고 자세히 보여줬다. 값나가는 디지털 카메라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걸 사려면 여기서 얼마나 일하면 되겠냐고, 그녀가 당돌하게 물었다. 주인은 웃어넘기려 무던히 타일렀다.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일을 맡기니. 그녀가 심호흡했다. 나는 날 수 있어요, 레이무의 목소리가 상가 거리로 퍼졌다, 그게 제 능력이죠. 행인들이 한 번씩 이쪽 가게를 흘겨다 봤다. 주인이 정색하고 나무라는 것을 그녀는 흘려들었다. 레이무는 처마 바깥으로 물러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시선을 상상했다. 정말이에요. 레이무가 얕게 몸을 띄웠다. 주인은 속아줄 셈으로 매대 바깥까지 목을 빼내 그녀가 발 딛은 곳을 살피려 들었다. 때맞춰 하늘로부터 강풍이 쏜살 소리를 내며 내리쳤다. 새다. 레이무는 놀라지 않았다. 레이무가 들뜨면 그녀를 가라앉히러 늘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주인이 머리를 사리는 틈에 손놓은 카메라를 날름 가로채 갔다. 그리곤 가게 옆편에 난 건물 사이의 틈새로 도망쳤다. 정신을 차린 주인이 뒤쫓아왔다. 거긴 막다른 곳이었다. 그러나 그 길 어디에도 레이무는 없었다.

  레이무는 가게 지붕에 올라 서둘러 카메라를 켰다. 머리 위로 검은 새가 지나가고 있었다. 레이무는 그리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었다. 찍힌 사진을 그 자리에서 확인했다.

  뭐야, 멈추질 않잖아! 새는 사진에 제대로 잡히질 않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상이 흐리게 번졌다. 맨눈으로 보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레이무는 카메라를 팽개쳐 버렸다. 그리고 하늘로 날았다. 무턱대고 새를 쫓았다. 저항하는 공기를 온몸으로 부수며 나아갔다. 레이무는 지금처럼 속도를 내본 것도 이만큼 고도를 높여본 것도 처음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머리가 내려다보였다. 그중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레이무는 가슴이 벅찰 만큼 빠르게 날았지만 새는 한참 더 빨랐다. 새를 놓칠 게 분명했다. 내심으론 알고 있었으나 쫓아보지 않은 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고 일단 쫓기 시작하자 멈춰야 할 때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날 힘이 다했다는 걸 깨달았다. 더는 날 수 없었다.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떠나왔던 지붕은 보이지 않았다. 지상은 멀었다. 헉하고 숨통이 부풀었으나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현기증이 찾아들면서 발밑이 순식간에 꺼졌다. 엄마. 레이무는 뭐라도 붙잡을 것처럼 허공에다 팔을 뻗어 빈손을 움켰다. 그녀는 추락했다.

 

  레이무는 폐신사에서 눈 떴다. 몸은 다친 데 없이 멀쩡했다. 누군가가 재워두고 간 듯 기둥에 몸이 기대어졌다. 그녀의 것이 아닌 외투가 가슴에 덮였다. 저번에 본 아야의 옷이었다.

  레이무는 옷을 챙겨 안채에서 나왔다. 신사 뒤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야.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뒤편으로 뛰쳐 갔다. 거기 있던 건 금발이었다. 레이무가 나는 모습을 보였던 그 자리에 금발이 서 있었다. 레이무를 마주치자 굳어버렸다. “그렇게 날고 싶었니?” 금발의 얼빠진 낯빛이 붉어졌다. “몰라!” 금발은 도망쳐 버렸다.

  “샘이 난 거야. 쟤도 날고 싶어 하거든.” 이튿날 학교에서 레이무가 금발을 가리켜 말했다. 아이들은 혹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금발은 유난히 레이무를 몰아세우곤 했으므로 달리 흑심을 품은 것 같기도 했다. 속이 들통난 금발은 잠시 절절대더니 이내 안색을 바꿔 어깃장을 놓았다. 너희는 그걸 믿어? 애초에 인간이 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아이들은 다시 레이무를 탓했다. 그들 눈에 더 별나고 시비 걸 구석이 많아 보이는 건 레이무였다. 비록 누구도 믿진 않았지만 그녀는 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믿을 수 없겠지. 레이무는 그렇게 무시했다.

  이모도 그렇게 조언했다. 어차피 곧 졸업이었다. 무슨 흉이 잡히건 더는 안 보고 말 사이였으며 그러고 나면 머잖아 서로를 잊게 될 것이었다. 어느새 레이무가 어머니의 모습을 더는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듯이. 학년이 올라 학교가 바뀌고 나서 날지 않도록 조심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레이무는 묵연히 듣다가 반문했다. 그럼 아무도 날 모르게 되나요.

 

  레이무는 비명 소리에 잠을 깼다. 그녀는 이부자리 위를 부유하는 중이었다. 잠결 중에 날아올라 이불을 보자기 유령 꼴로 느리우고 있었다. 잠자리를 살피러 들어온 이모가 그 광경을 보곤 놀란 소리를 낸 거였다. 등 뒤가 마른땀으로 서늘했다. 비명에 깨어나던 찰나 꿈에서 추락한 것 같았다. 이모는 망연히 입을 틀어막았다. 이불보 멀쩡해요. 그녀가 넉살스레 침묵을 깨자 이모는 마지못해 돌아나갔다. 몸이 한동안 가라앉질 않았다. 애써 누웠다가도 들쑤신 몸이 도로 떠올랐다. 그녀는 잠자리를 벗어나 카메라와 겉옷을 챙겼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레이무는 시내로 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드문드문 인적이 있었다. 일부러 으슥한 데를 찾아 들어갔다. 술주정을 부리거나 널부러져 한뎃잠 중인 사람이 태반이었다. 레이무는 거기서 날기 시작했다. 당장은 보는 눈이 없었으나 주변 건물보다 높아지면 비행하는 모습이 사방에 드러나 보이게 될 것이었다. 그녀는 보란 듯 옥상층을 제꼈다. 곧 지상이 떠들썩했다. 취객 몇 명인가가 레이무를 눈치채고 웅성거렸다. 레이무가 높이 날수록 점점 하늘로 손가락질을 치켜드는 이가 늘어갔다. 그러나 어지간한 행인들은 허튼 소란으로 여겨 신경 쓰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사람들도 깊게 살피진 않고 금방 관심을 끄기 일쑤였다. 사람이 날 리 없었으므로 그들은 눈앞에 보인 광경을 믿지 않았다. 그녀도 더는 지상에 마음 두지 않고 묵묵히 날았다.

  사나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무는 바람 기척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의 얼굴이 보였다. 아야가 날아오던 그대로 레이무를 낚아채 갔다. 옷 가지러 왔구나. 레이무가 실소를 지으며 외투를 내밀었다.

  “왜 그랬어요?” 아야가 물었다.

  “왜냐니. 나는 날 수 있으니까.”

  아야는 일순 말부리가 막혔다. “남들이 이상하게 보는데도요?”

  날아봤자. 레이무가 아야의 옷깃을 가까이 잡아당겼다. “믿는 사람이라곤 당신밖엔 없어.”

  아야는 레이무를 감추듯 안아 들고 외곽으로 피했다.

  그들은 산으로 들어가 폐신사에 내렸다. “집까지 걸어갈 수 있겠죠.” 아야가 그녀의 양어깨를 감싸 쥐었다. 당신의 집은. 당신은 어디로 가지. 레이무는 불퉁히 대받았다. 아야는 눈을 굴리며 적당한 말을 찾았다. “저는 앞으로, 사라질 거예요. 레이무라면 무슨 뜻인지 알죠.” 레이무는 사라진다는 말이 익숙했다. ? “이렇게 날개가 달린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어요?” 아야가 심각해진 레이무를 눙쳐주려 실없이 날개를 나풀거렸다. 그녀는 되려 울컥했다. “그럼 내가 지금 보는 건 환상이라도 돼?” 아야가 뜨끔했는지 아양스레 어깨를 들썩였다.

  “나도 사라지겠네.” 그녀가 자조했다. 계속 날 셈이군요. 지적받은 그녀는 입을 내밀어 토라진 티를 냈다. 아야는 금세 타이르는 말씨로 입을 닦았다. 너무 한탄하지 말아요, 아직 어린 게. 아야가 숄더백에서 사진 한 다발을 꺼냈다. 당신이 날았던 사실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아요. 그건 모두 레이무가 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레이무는 사진 꾸러미를 낱장씩 넘겨 나갔다. 폐신사에서 찍힌 것만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의 비행들이 모두 포착돼 있었다. 매 장마다 귀퉁이에 날짜가 기록됐다. 레이무가 처음 날았던 때부터 찍어왔으니 그게 다 수년 치 분량이었다. 톺아보는 태도가 그 자리에서 모든 사진을 확인해 볼 기색이었다. “어째서 날,” 레이무는 큰 목소리로 따질 듯 올려붙였다가 막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가만두면 사라질까봐요.”

  “그런데도 두고 갈 거야?”

  “제가 사라져도 당신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엄지를 훑던 사진 더미가 어느덧 맨 끝으로 넘어갔다. 그게 마지막으로 찍힌 거였다. 레이무가 금발 앞에서 날고 있었다. 사진 속 금발의 뒷모습을 아야가 손으로 짚었다. 이 아이는 내심 레이무를 믿고 있었다. 레이무는 뜨끔했지만 부러 태연한 척을 했다. 곧 졸업이었다. 졸업하고 나면 금발 아이도 곧 그녀를 잊게 될 것이었다. “그럼 잊지 못하게 해줘요!” 아야는 낭창히 말했다.

  레이무가 급스레 아야의 옷깃를 잡아당겼다. 아야는 못 당하는 척 옆으로 끌려가 그녀와 얼굴을 나란히 세웠다. 레이무가 자신의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카메라가 반대 방향을 향했다. 렌즈가 그들을 바라봤다. 자신들이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는 채 그녀는 공중대고 셔터를 눌렀다. 당신도 날 잊으면 안 돼! 옷자락을 붙잡은 손이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레이무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가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아야가 없었다. 각이 빗나간 화면에 아야는 담기지 못했다. 사진에 남은 건 자신뿐이었다. 그녀는 훔친 사진기를 몰래 돌려놓았다.

 

  금발은 레이무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이를 기어이 불러낼 셈이었다. “너도 날게 해주지.” 그녀는 그 말로 금발을 꾀어냈다. 금발은 침을 삼켜가며 간신히 승낙했다.

  종례 후에 그들은 곧장 학교 뒤편 산속의 폐신사로 향했다. 저번과 같은 자리에서 레이무가 손을 내밀었다. 금발이 멀뚱대자 붙잡으라 시켰다. 그 아이의 손을 욱여 쥐었다. 그리곤 언질도 없이 날아올랐다. 금발은 멋모르는 새에 끌려 올라갔다.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다가 까마득해진 땅을 눈치채곤 그만두었다. 떨어졌다간 무사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얽매인 손아귀를 양손으로 붙들고 매달렸다. 그 아이는 매달린 밑에서 시계추처럼 요란하게 흔들렸다. 레이무의 팔이 떨렸다. 흰 맨살 위에 빳빳히 푸른 힘줄이 잡혔다. 평소보다 두 배 힘이 드는 셈이었으나 그녀는 용써가며 위로 향했다. 하늘이 트이는 데까지 금발을 끌고 올라갔다. 저무는 해가 따뜻한 석양볕을 비췄다. 금발은 엉망으로 우는소리를 냈다.

  “알겠지? 나는 정말 날 수 있다는걸.”

  금발은 알겠다고, 믿겠다고 연방 외쳐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무는 잊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중에 딴소리를 했다간 떨어뜨려 버릴 거라고.

  “믿는대도! 이젠 믿으니까 놓지 마!”

  금발이 레이무의 손을 꽉 붙잡았다. 레이무도 그 아이를 매단 손을 힘껏 맞잡고 있었다. 악다물던 입가가 누그러지려 했다. 자꾸만 웃음기가 달싹였다. 나무숲 사이 어딘가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아야의 등 뒤에서 결계의 틈이 메워졌다. 그녀는 지나온 뒤편을 일별했다. 이제 한동안 바깥세계로 나갈 일은 없을 것이었다. 오늘로 취재는 끝이었다. 이번 무녀가 임명된 직후부터 시작한 취재였으니 육 년만의 일을 끝마친 거였다. 사적인 취재 목적으로 수년간이나 결계를 들락거릴 수 있었던 것은 무녀가 관리자에게 말을 통해 준 덕택이었다. 이제 아주 복귀했으니 그 무녀에게 인사를 찾아가야 했다. 아야는 원고와 사진 자료를 엮은 문서철을 들고 인쇄소를 찾아 인쇄를 접수 시키고, 즉시 복사 제본 한 부를 따로 부탁해 받아왔다. 기사의 첫 장엔 레이무가 처음 날던 날의 사진이 올랐다. 무녀가 바깥세계 출신으로 내정되던 때에 소문이 돌았다. 무녀의 자식이 바깥세계에 외따로 남겨져 있다는 소문이었다. 무녀의 피를 이어받은 딸이 몸 붙일 데도 없이 무사히 지낼 수 있을지, 항간의 화두가 되었다. 아야가 보기에 그것은 더없이 기삿거리였고 그길로 취재 허락을 따내러 무녀를 꼬셨다. 어쨌건 당신도 떼어두고 온 딸의 소식이 궁금할 것이었다. 아야는 약속대로 레이무가 졸업하기까지의 유년기를 르포로 엮었다.

  하쿠레이 신사에 날갯짓 소리가 퍼덕이자 무녀가 한달음에 마중나왔다. 육 년만의 붕붕마루입니다! 수년 동안 쌓여온 무거운 소식지를 아야는 경쾌하게 날려 보냈다.

 


 

 

아야!(사라지는날개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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